Sermons

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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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38                                                               성숙한 그리스도인

 

마가복음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그 두 번째 부분의 시작이 8:27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받으실 수난을 정식으로 알리고 그리고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갈릴리 중심으로 사역하시던 예수님께서 이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예수님이 누구냐? 이런 질문이 많았지만 숨기시고 있다가 본문부터 공식적으로 자신을 밝히시죠. 자신이 그리스도이며 메시야라는 것을 알리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바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말씀하셨는데요. 참된 신자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을까요?

 

1> 자기를 부정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정하며 살 수 있을까요? 자신을 부정하는 삶을 살려면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려야 가능한 거죠. 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께 우리 몸을 제물로 드린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여러분! 제물은 제물 외에 다른 용도로 쓸 수 없습니다. 다른 용도로 더럽히면 안 된다는 거지요.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어야 합니까?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좋아하는 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건데요. 이것이 쉽지 않지요. 그래서 자기 부정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자기부정이 없을 때 거기에는 늘 “나”라고 하는 것이 있어서 하나님 영광을 가로채게 되지요.

 

칼빈은 “바른 자기부정은 이웃에게 바른 태도를 갖게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자기부정은 먼저 이기적인 삶을 버리게 하고, 그리고 겸손하게 하며, 다른 사람을 존중하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친절하게, 정중하게 맞는다는 건데요. 이처럼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겸손하게 되고, 남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을 때 주님이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칼빈은 “자기부정은 이웃에게 봉사하게 한다.”는 말도 했는데 이런 사람은 먼저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헌신하게 되죠. 자기를 부정하는 사람은 고전13:4-5절 말씀처럼 “교만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위해 일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이렇게 서로 나누며 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제사가 되고요. 이럴 때 자기를 부정하는 삶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2> 십자가를 지며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참된 신자일까요? 첫째는 자기를 부정하고, 둘째는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 때문에 어려움 당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이런 십자가는 우리의 교만을 꺾기 위해서 가끔 필요한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사람들은 쉽게 교만해지죠. 은혜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처럼 교만해진다는 겁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있을 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요. 십자가를 지고 갈 때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을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을 때 어떤 축복이 있을까요? 5:101-11=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악한 말을 할 때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너희의 상이 큼이라” 롬8:18=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가 믿는 것 때문에 고난을 받는다면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3> 자기 목숨을 희생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해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갈2:20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의 신앙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 것이요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니라.” 얼마나 귀한 믿음입니까?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교훈 하나는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알 때 그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습니까? 이것을 알 때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 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이 하신 일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자기를 부인할 수 없고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한 사람을 부르실 때는 그로 하여금 와서 죽으라고 명령하신다!” 예수님 앞에 나오면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살아야 한다는 거고요. 이것이 갈2:20절에 나오는 바울의 고백과 같은 겁니다. 본회퍼는 급진적인 신학자지만 야고보처럼 행동파였습니다. 미친 사람이 자동차를 몰고 인도로 달리며 사람들을 죽이고, 짓밟고 있다면 가만히 앉아서 차도로 내려오도록 기도만 해야 하겠는가? 차에 올라가서 그 사람을 끌어 내리든지, 뭔가 행동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사람이죠. 그래서 독일 나찌를 공격하다 투옥당하고 후에 처형당했지요. 그 사람의 사상이 다 옳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그는 행동하는 학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진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졌던 사람이죠. 오늘 우리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인가요? 베드로는 예수님이 메시야인 것을 입으로 고백을 했지만 아직 십자가를 질만한 단계가 되지를 못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했을 때 만류를 하고, 심지어 예수님을 꾸중하였습니다. 3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여기 “간하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예수님을 책망했다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누군데 예수님을 꾸중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여기에는 베드로의 감정이 섞여 있는데요. 여러분! 평상시 그냥 하는 말과 분하거나 억울할 때 감정이 섞인 말은 엄청 다르지 않습니까?

 

왕상 17장에 보면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과부는 엘리야에게 이런 말을 하지요.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애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그냥 하는 말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지만요. 좀 안 좋은 감정이 섞이면 “네가 뭔데 이래?” 화가 나 보세요. “당신 뭐야!” 이런 말이 되잖아요.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뭐라고 해요?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 말을 평상시 하는 대로 하면 “왜 그러십니까?” 정도지만 감정이입이 되면 “당신이 뭔 상관이야!” 그러고요. 감정이 격하면 어때요? “당신 정말 나한테 이럴 거야!” 완전히 다르죠.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감정을 다 빼고 문자만 읽으니까 원래의 뜻을 바로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물었지요. 베드로가 대답을 잘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말은 “주님은 메시야입니다.”라는 말과 같지요. 메시야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희망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가 곧 죽을 거다.” 그러시니까 성질 급한 베드로가요. 예수님을 꾸중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얌전히 말했을까요? 아니지요. 감정이 섞여있지요. 예수님께서 죽는다고 말씀하시니까 엄청 화가 나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합니까? 메시야라는 양반이 죽다니요? 그런 정신 나간 소리 하지마세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한 거죠.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책망하셨죠.

 

사람들은 “우리가 믿는데 왜 이런 고난이 와야 하는가?” “예수 믿는데 왜 사업이 잘 안 되지?” “왜 병에 걸리지?” “하나님은 뭐하시는 거야?” 이렇게 불평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숙한 신앙이 아니죠. 바른 신앙의 길에도 어려움은 있습니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요베드로는 아직까지 영광의 주님과 고난 받으실 주님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무조건 행복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 믿으면 복만 받고, 좋은 일만 있는 줄 알고 있습니까? 하는 일마다 형통하리라고만 생각하십니까? 십자가를 지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께서 길에 대하여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넓은 길에는 가기가 편해서 사람들이 많이 간다고 하였지요. 그러나 종착역은 어디입니까? 지옥이지요. 좁은 길에는 가는 사람이 적습니다. 왜 그렇지요? 힘이 들기 때문이죠. 그 길을 가려면 희생을 치러야 하고요. 고통도 따르지 않습니까남들이 하지 않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요. 고난도 있고요. 눈물을 흘리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종착역은 천국이죠. 하나님의 나라, 영광스러운 나라죠. 아무나 갈 수 없는 곳 아닙니까? 제자로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희생이 따릅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쫒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어려운 일이 있어도 예수님께 베드로처럼 화내지 말고 묵묵히 주님 바라보고, 천성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믿음이 성숙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