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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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                                                                 말씀대로 믿는 신앙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지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던 모양입니다. 이걸 가지고 비난을 하지요. 장로들의 유전, 전통에 위배된다는 겁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율법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을 해석하면서 덧붙인 거죠. 전통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조상들이 전해 준 것인데요. 당시에는 그들의 전통인 탈무드가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단지 구전으로, 말로 전해 내려오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전과 전통을 아주 특별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지키고 따라야 옳은 사람이며, 따르지 않는 이방인들은 부정한 사람으로 여겼지요. 지금도 어떤 나라에서는요. 오른 손으로만 음식을 먹어야지, 왼손을 사용하면 아주 불결하게 여기는 나라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는 오른 손으로 먹든, 왼손으로 먹든, 손으로 음식을 비벼 먹으면 더럽기는 마찬가지로 생각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보실 때 바리새인들이 유전과 전통을 따지지만 마음 상태가 틀렸기 때문에 더럽기는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유대인들은 시장 보러 갔다가 집에 오면 손을 씻어야 합니다. 장을 보면서 손이 더러워져서가 아니라 혹시 이방인이 지나갔다든지, 부정한 사람이 지나갔으면 자신도 부정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런 생각이 바로 잘못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하셨습니까?

 

성적 타락입니다.

이것들은 7계명과 관련이 있는데요. 어느 시대나 이런 죄악들이 있었습니다. 노아시대도 벌써 사람들이 성적으로 타락하였지요. 6:3=“그들이 육체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공동번역에서는 “모두가 동물이 되었다” 이미 사람들은 짐승처럼 되었다는 말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짐승들에게는 윤리라는 것이 없지 않습니까? 소돔 고모라는 어떠했습니까? 19장에 나오지요. 그때 벌써 동성연애가 있었지 않아요? 왜 하나님이 노아시대에 홍수로 심판하셨고, 소돔을 불로 심판하셨어요? 너무 타락했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짐승처럼 되었기 때문이죠.

 

도둑질, 탐욕, 속임수입니다.

바른 사회는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이죠. 그런데 세상이 그렇습니까? 남을 눌려야 내가 사는 이런 현실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속여서라도, 훔쳐서라도, 내 욕심을 채우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살인, 악독, 교만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너무나 타락한 상태에 있습니다. 세상이 타락하여 크게 영향을 받으며 우리가 살고 있지요. 그러나 환경이 좋다고 죄를 안 짓습니까? 그것도 아니죠. 아담을 보세요.   그가 살고 있는 환경이 얼마나 좋았어요? 모든 환경이 선으로 가득하였지요. 에덴동산 말입니다그러나 죄를 짓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환경만 탓할 수도 없습니다. 마음 문제죠. 바리새인들이 잘못된 것은 이미 마음이 잘못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 자꾸 예수님에게 시비를 걸고 미워하지요. 시비를 거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말씀을 하셨어요? 6=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8= “너희가 하나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여러분! 진리와 전통 어느 것이 중요합니까? 10절을 보세요.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본래의 뜻은 부모를 공경해하라는 말씀이죠. 그런데 유대인들은 유전을 악용해서 부모에게 드릴 것을 하나님께 드릴 것이라고 하면 부모에게는 안 해도 된다는 형식에 치중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아니죠. 하나님께도 드려야 하지만 당연히 부모에게도 해야 효도하는 거죠. 하나님 핑계대고 내가 응당 해야 할 것을 안 하면 잘못입니다.

 

졸업고사를 앞둔 어떤 크리스챤 학생이 있었습니다. 시험 준비를 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아 공부는 뒤로 미룬 채 하나님께 기도만 하기로 했습니다. 부지런히 금식기도도 하고, 철야기도도 했습니다. 시험을 잘 치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드디어 시험 날이 왔습니다. 막상 시험지를 받고 보니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는 결국 백지를 내며 시험지 맨 끝에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이렇게 채점했습니다. ‘하나님은 A+, 너는 F’ 여러분! 하나님 핑계대고 할 일을 안 하는 것은 잘못이죠.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랬다는 겁니다. 유전을 따르며 부모공경을 피해가는 일들이 있었다는 거죠. 전통이나 유전이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탈무드가 있지요. 유대인들의 유전과 전통들을 정리한 건데요. 탈무드는 예수님이 오시기 300년 전부터 A.D 800년 사이에 완성되었습니다. 탈무드의 제1부는 “미쉬나”라고 하는데요. 모세오경 외에 전해오는 율법 규례들을 성문화한 것이고요. 2부는 “게마라”라고 하는데 미쉬나를 해석한 것입니다. 탈무드는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를 가깝게 하려는 목적으로 쓰여 졌지만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킨다면 큰 잘못이지요. 유전과 전통들이 하나님 뜻을 흐리게 된다면 고쳐야죠.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주장이었습니다.

 

집에는 대개 울타리나 담장이 있습니다. 그 울타리는 집 안에 있는 것들을 감싸고 보호하는 일을 하죠. 그러나 울타리가 다 좋은 것은 아니죠. 일단 울타리를 넘어가면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처럼 울타리 같은 규범이 있어서 좋은 면도 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데 방해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 안에도 교리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교리를 연구하는 신학을 조직신학이라고 하는데 어떨 때는 잘못된 조직신학 때문에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있어요. 성경을 그대로 봐야 하는데 조직신학이라고 하는 안경을 쓰고 보기 때문에 원뜻을 잘못 보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의 잘못이 바로 이런 것이죠. 색안경을 끼고 예수님을 보니까 예수님을 바로 볼 수가 없죠. 여러분! 좋은 전통과 유전은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떨 때 과감히 버려야 할까요? 어떨 때 전통이 위험할까요?

 

1> 전통이 내면적인 마음을 무시할 때입니다.

 

성경에서 손을 씻는다는 것은 위생을 위해 손을 씻는다는 의미가 아니죠. 위생을 위하는 거라면 100번이라도 씻어야죠. 그러나 성경에서 손을 씻는 정결예법은 제사를 위한 거죠.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 나가는 절차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예법이죠. 그렇다면 손을 씻는 것이 중요합니까? 하나님 앞에 나가는 마음이 중요합니까? 손을 아무리 씻어도, 마음이 잘못되어 있으면 안 되죠. 손보다는 마음을 씻는 것이 더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마음은 씻지 않고 손만 씻는다고 되나요전통이 마음을 무시하면 그건 잘못된 겁니다. “저들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거죠.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결국 같은 말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신문에 ‘전쟁과 평화’라는 제목의 광고가 게재됐습니다. 거기에는 두 교회의 당회실 풍경이 소개되어 있었는데요. 한 교회의 대표는 별명이 ‘법이요’라는 장로님이 있었고요. 다른 한 교회에는 ‘법을 잘 알고 지킵시다. 그러나 늘 법을 주장하지는 마시오.’ 그러는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요. 아이러니컬하게도 ‘법이요’ 장로님이 있는 교회는 오히려 탈법 행위가 많아서 항상 전쟁 분위기였고요. 후자가 섬기는 교회는 항상 평화로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야말로 ‘전쟁과 평화’로 비교되는 두 교회를 보여주었습니다. 여러분! 법 따지고, 전통 내세운다고 교회가 평안해집니까? 그런 것을 아무리 내세워도 마음의 변화가 없으면 안 되죠. 내적인 변화가 중요합니다. 마음이 멀어지면 안 되는 거죠. 마음의 변화를 무시하며 주장하는 전통은 옳지 않습니다.

 

2> 전통이 성경을 무시할 때입니다.

 

전통이 진리를 대신 할 수는 없지요. 전통이 진리와 맛 선다면 우리는 전통을 버려야 하는 겁니다. 형식도 중요합니다만 형식이 진리보다 앞서는 것이 아니죠.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기도문이 있습니다. 외우는 것이 중요합니까? 그대로 믿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까? 우리는 십자가를 중시하는데요. 그런데 십자가 목걸이를 아무리 많이 달고 다녀도 십자가의 내용이 없다면 그 십자가는 의미가 없는 거잖아요. 십자가 목걸이, 십자가 나무틀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 예수 안 믿어도 구원받습니까? 아니죠. 내용이 있어야 하고, 진리를 믿어야 하고, 말씀을 따라야죠. 전통이나 형식이 진리를, 말씀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겁니다. 어떤 분은 차에다가 성경책을 올려놓고 다니죠. 교통사고를 예방해 준다고 믿지요. 그런가요? 아니면 십자가를 차 앞에 걸고 다니죠. 그런다고 교통사고를 방지하나요? 잘못하면 미신이 되죠. 내용이 없으면 소용없는 겁니다. 십자가가 무슨 부적입니까? 성경이 부적이에요?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 예수님을 보아야 하고요.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은 그대로 믿어야지, 환경이나 그 어떤 것으로라도 대체해서 믿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어느 보수적인 목사님이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심없이 믿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마침 곁에 있던 진보적인 목사님이 대꾸합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성경을 그대로 믿으면 큰일 납니다.” 그것은 성경을 불신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처음 말을 꺼낸 보수적인 목사님에게 집중되었습니다. 모두들 초조한 마음이었지요그런데 그 목사님은 참으로 의외의 말을 했습니다. “그럼요. 성경을 그대로 믿으면 큰일 나지요.”

사람들은 ‘저럴 수가’ 하며 깜짝 놀랐는데요. 그 목사님은 말을 이어갔습니다. “와 보십시오. 우리 교회에는 성경을 그대로 믿어서 큰일 낸 사람들이 많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성경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과 함께 하셔서 큰일을 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말씀은 의심 없이 그대로 믿는 겁니다. 말씀을 빼거나 더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은 그대로 믿는 거고요. 말씀보다 앞서는 것은 없습니다. 그대로 믿는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겁니다. 말씀을 그대로 믿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