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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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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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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 N. Dale Avenue Anaheim, CA 92801 (714) 360-3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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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6:1-6 불신 당하신 예수님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의 능력은 참으로 대단하죠. 거센 풍랑을 잔잔케 하셨고, 귀신들린 사람을 말씀 한마디로 치유하시고, 12년을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을 고치셨고요.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자연을 마음대로 다스리시고, 영의 세계와 질병, 죽음까지도 다스리시는 주님의 능력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팔레스틴 지역에서 바로 영웅이 되었습니다. 인기가 폭등했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일부 사람들에게 불신을 당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1> 고향사람들에게 불신을 당하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을 냉대하였습니다. 6=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고 말씀하지요. 요한복음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나옵니다. 요1:10-11=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세상이 자신들을 창조한 조물주를 몰라본다는 말씀이죠.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4가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의 지혜와 권능이 어찌된 것이냐?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그의 형제들이 여기 있지 않느냐? 요즘 식으로 하면 학연, 지연을 따지고, 가문을 따지는 겁니다. 나다나엘은 요1:46절에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지역을 들고 나오지 않습니까? 고향사람들은 아예 예수님을 비웃는 조로 말합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무슨 말입니까? 유대인들은 누구의 아들이라고 할 때 아버지의 이름을 대며 부르는 것이 상례인데요. 그렇다면 예수님을 부를 때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이렇게 불러야지요. 그런데 뭐라고 합니까?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무슨 말입니까? 아비 없이 태어난 사람이라는 경멸의 뜻이 묻어있지요.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배운 것이 무엇이며, 가난한 목수로 살던 사람 아니냐는 거죠. 자신들이 아는 선입관을 가지고 예수님을 판단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까지 하였습니다. 잘못된 선입관! 이것이 참으로 무서운 것이죠. 뉴욕의 한 주교가 교황청 방문을 위해 바티칸으로 갈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배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라 유람선을 타고 갔다는데요. 방을 배당받아 방에 들어갔습니다. 조금 후에 다른 한 남자가 들어오는데요. 2인용 침실이니까요. 꼭 도둑같이 생긴 겁니다. 인상이 너무 안 좋아요. 들어오던 남자가 주교를 한번 째려보더니 밖으로 나갔습니다. 주교도 기분이 안 좋았죠. 그래서 혹시나 저 사람이 귀중품을 훔쳐 가지나 않을까? 걱정이 돼서 귀중품을 챙겨서 경비실로 갔습니다. “같이 묶을 사람 인상이 안 좋아서 그러니 이걸 좀 맡아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때 경비가 몇 호실이냐고 물었습니다. 201호실이라고 대답을 하는데 경비가 이어서하는 말이 “방금 201호 손님이 와서 물건을 맡기고 갔는데 그 분도 댁과 똑같은 말을 하고 갔습니다.” 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람을 잘 모르고, 대충 보고, 겉만 보고, 평가할 때가 있지요.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할 때도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향 사람들이 그렇죠. 예수님의 겉만 보고 다 아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4절에서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선지자가 고향과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예수님을 너무 잘 안다고 하는 고향, 친척, 친지들이 오히려 배척하고 믿지 않는다는 겁니다. 2> 헤롯왕에게 불신을 당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능력을 받아서 이적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소문이 헤롯왕에게까지 들어갔지요. “도대체 예수님이 누구이기에 제자들까지도 능력을 행하느냐” 그래서 심지어 왕이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엘리야라고 하기도 하고요. 어떤 사람들은 구약시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하고요. 헤롯은 세례요한, 자신이 죽였던 요한이 살아났다고 하지요. 어쨌든 정치권에서도 예수님을 곱게 보지를 않았습니다. 헤롯은 눅23장에 보면,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조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서 빌라도에게 보내버리지요. 예수님을 아주 능멸하였습니다. 1세기에 유대인들은 유대 역사상 세 사람을 가장 비참하게 죽이는 잘못을 범했다고 하는데요. 세례요한의 목을 쳐 죽인 것과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것, 그리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도 예수님을 불신하고 배척하였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의 예수님에 대한 불신 풍조였습니다. 3> 제자들에게 불신을 당하였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밥 먹을 겨를도 없을 만큼 바빴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무튼 제자들에게 휴가를 주셨지요. 31=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쉬라”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방해꾼이 있었지요. 수많은 무리들이 찾아온 겁니다. 제자들은 한적한 곳에 가서 좀 쉬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또 수만 명씩 몰려와 전혀 쉴 수가 없었지요. 짜증이 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간혹 너무 피곤해서 아무 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지요? 그런데 남편이 친구들을 많이 데리고 와서 밥 차려달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짜증이 안 나겠어요? 제자들도 짜증을 내면서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각자 나가서 사먹게 하자는 것이고요. 둘째는 돈이 없다고 거부하는 겁니다. 이건 예수님께 하는 불신의 소리죠. 때는 저물었습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빈 들입니다. 시간적으로, 장소적으로, 경제적으로 음식을 줄만한 여건이 되지를 못하였지요.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런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보았습니까? 제자들은 부정적으로, 인간적으로 어려움을 바라보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37= “200데나리온이 있어도 부족합니다.” “불가능합니다.” 제자들은 이렇게 말하지만 예수님은 반대죠. 38= “너희 중에 떡 몇 개가 있느냐? 가서 찾아보라!” 가능성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셨지 않습니까? 3:21절에 보면 친척들이 예수님을 불신하고 배척하였고요. 6장에서는 고향 사람들이 불신과 배척을 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고운 시선으로 보지를 않고 있고, 지금 제자들마저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나 남기게 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체험한 군중들과 제자들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먼저 군중들인데요.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요6장에 보면 그 많은 사람들이 그냥 다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군중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제자들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요6:45-52절을 보면요. 제자들이 바다를 건너다가 큰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셨지요. 그때 그들은 예수님을 유령으로 보고 더 무서워하지 않습니까? 52절에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 졌음이러라.”무슨 말씀이죠? 예수님의 능력과 이적을 보고서도,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의 불신 상태를 지적하는 겁니다. 오천 명을 먹인 사건과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이적들을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이 바로 성장하기를 바라셨지요. 먹는 문제, 환경문제, 그 어떤 문제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주님은 원하셨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어떤 문제를 만나도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겁니다.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이적은 벌써 두 번째였습니다. 4장에서 한번! 그리고 오늘 6장에서 또 한 번! 차이가 있다면 4장에서는 예수님이 배 안에 계셨다는 것이고, 6장에서는 예수님이 배 안에 안 계셨던 차이입니다. 예수님이 배 안에 안 계셔서 더 걱정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믿음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풍랑 중에서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지를 못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항상 옆에 계시다고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멀리 떨어져 계신다고 믿습니까? 예수님은 풍랑을 만났을 때 해결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시죠. 시23: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예수님은 선한목자로서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족에게, 친척들에게, 고향사람들에게, 정치권에게, 심지어 제자들에게도 불신을 당하셨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할 일을 다 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배척을 해도 실망하지 않고요. 정치권의 사람들이 박해를 해도 담대히 할 일을 하시고, 종교지도자들이 미워하고 불신을 해도, 제자들의 믿음이 아직 자라지 못해서 엉뚱한 소리를 해도 사랑으로 대하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을 본받으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