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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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41                                                                   해결하는 능력

   

루즈벨트 대통령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지금보다 더 어려운 미국 대 공황 때죠.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것이라”는 말을 했는데요. 이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경제적 위기나 정치적인 위기보다도 심리적인 공항에 빠지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겁니다. 대 공항이나 경제적 침체를 만나도 우리의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는 건데요. 우리는 믿는 자로서 주님의 능력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막4-5장에 4개의 이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상황은 각각 다르지만 예수님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도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면 문제 될 것이 없겠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는데요.

 

첫 번째 이적은 풍랑을 잠재우신 이적이죠.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아주 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4장에서 씨 뿌리는 비유, 등불 비유, 자라는 씨 비유, 그리고 겨자씨 비유를 들었지요. 그러고 나서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풍랑 만날 것을 아셨을까요? 몰랐을까요? 아셨겠지요. 그런데 왜 모른척하고 주무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의도하시는 바가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일까요? 말씀을 듣고 믿음이 얼마나 자랐나를 테스트하시는 겁니다. 말씀을 듣고 얼마나 성숙해졌느냐? 이것을 보기 위해서죠. 제자들은 두려워하며 예수님을 깨우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믿음이 아직도 부족하다는 거죠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살면서 풍랑을 만나지요. 건강에 풍랑이 일어날 때가 있고요. 직장 문제로, 비지네스 문제로 풍랑이 일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아 풍랑이 일기도 하죠. 돈 풍랑이 일 때도 있지요. 그런데 우리도 이런 것들 때문에 제자들처럼 두려워하고 불평하지 않습니까?

 

지난 월요일 LA에서 교단 목사님들의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강사 목사님이 20년 전 이야기를 말씀하시는데요. 한국에서 여러 신학교 강의를 하며 어렵게 모아 온 2만 불을 어떤 교인이 급한 사정을 이야기하며 좀 빌려달라는 겁니다. 순진하게 빌려 주었더니 아직까지도 연락이 안 된다고 합니다. 요즘도 간혹 자다가 벌떡 벌떡 깬다고 하는데요. 20년이 지나도 잊어먹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것뿐이 아니고요. 자동차도 두 대나 빼앗겼데요. 어떤 교인이 와서 잠깐만 빌려달라고 해서 Key를 주었더니 안 가져오더래요. 다음 날 찾아가 봤더니 야밤에 이사를 가 버렸다고 합니다. 차도 가지고 가 버린 겁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또 다른 차를 빼앗겼다는 겁니다. 참 무서운 세상이죠. 우리에게도 이런 저런 풍랑이 일 때가 있지요. 어떻습니까? 두렵지 않습니까? 제자들이 두려워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 때 주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이죠? 40절인데요.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어떤 분이 무서워 시리즈를 말씀하시는데 참 재미가 있어요. 아침마다 눈 뜨기가 무서운 사람은 “무섭 대이(day)” 자신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무서워하는 사람은 “무섭 나(I)” 옆 사람이 무서운 사람은 “무서워 유(you)” 여자를 보면 무서워하는 사람은 “무서운 걸(girl)” 남자를 보면 무서워하는 사람은 “무섭 군(비오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무섭지 비” 모든 것이 다 무서운 사람은 “무섭 다(, all)”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계시다면 문제는 달라져야죠.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지만 예수님이 계시다면 무서워해서는 안 되겠지요.

 

두 번째 이적은 마귀를 내 쫒으신 이적입니다.

 

갈릴리 바다를 무사히 건너가기는 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귀신이 들린 사람 때문입니다. 군대 귀신이 들려서 아무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군대”라는 말은 “레기온”이라는 말인데요. 6000명의 사단 병력을 레기온이라고 하였습니다. 6000명의 장정의 힘이라면 얼마나 세겠어요? 어떤 분은 2000명이라고도 합니다. 돼지 2000마리에게 흩어져 들어간 것을 보고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숫자가 문제가 아니죠. 그만큼 힘이 센 정신병자를 동네 사람들이 고치지 못하는 겁니다. 누가 고쳐 주셨어요? 이 사람은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폐인이 되었지요.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그리고 직업을 잃었습니다. 무덤 사이에 살면서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누가 그의 인생을 망쳐놓았어요? 바로 사탄이죠. 오늘날도 바른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바른 사회가 되지 못하도록, 타락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벧전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동네 사람들에게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쇠사슬로 묶어두는 일뿐이었죠. 그리고 마을로부터 격리시키는 일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파멸로 가고 있는 이 사람을 고쳐준 사람은 예수님이었지요. 예수님은 자연만 control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의 세계에서도 마음대로 control하시는 분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세 번째 이적은 무엇입니까? 혈루병을 고치신 사건입니다.

 

12년을 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었지요.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갔을 때 놀랍게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몇 가지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을 가까이 가는 자세입니다.

 

예수님의 옷에 스치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이었겠습니까? 엄청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옷자락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들이 다 기적을 체험한 것은 아니었지요. 그러나 이 여인은 예수님을 대하는 자세가 달랐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갔지요. 예수님의 옷이라도 만지면 내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예수님의 칭찬과 선포가 있었지요. 이 분은 그동안 많은 의원들을 만났을 겁니다. 모아 둔 재산은 다 써버렸을 겁니다. 요즘 식으로 하면 이 병원, 저 병원, 한방, 양방 다 다녔겠지요. 그리고 당시에 이 병에 걸리면 부정하여 가족과 함께 살지도 못하였습니다. 회당에 참석하여 예배도 못 드렸습니다.

완전히 소외를 당한 사람이었지요. 이 여인의 이름이 외경에는 “베로니카”로 나옵니다. 베로니카! 그러면 유명한 전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로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실 때 너무나 힘들어 지치고 쓰러질 때 이 여인이 손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에 땀을 닦아드렸는데 그 손수건에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이 새겨졌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요. 어려운 처지에서 예수님을 만나 완전히 인생이 바뀐 거죠.

 

2> 듣는 것이 정말 소중하다는 겁니다.

 

여러분! 말씀을 잘 들으면 인생이 바뀝니다. 5:27절을 보세요. “예수의 소문을 듣고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여기에 두 개의 동사가 나오죠. “듣다”와 “손을 대다”입니다.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완전히 인생이 달라졌지요. 돈은 다 낭비하고, 가족들에게, 사회, 이웃에게 버림받은 소외받던 여인이 말씀을 듣고 기적을 체험한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 “딸아 평안히 가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아주 친근한 표현이죠. 삭개오가 예수님 만나러 갔을 때 “삭개오야 내려오느라” 이 말씀도 같은 겁니다. 삭개오가 이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겠어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모시고 자기 집으로 가지 않았습니까?

 

마지막 이적은 죽은 사람을 살리신 이적이죠

 

야이로의 딸입니다. 사람들은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아이를 살리는 과정에서 예수님은 4번의 말씀을 하셨는데요.

 

1> 믿음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36=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딸이 죽었다는 소리를 들은 야이로의 마음은 어떠했겠어요? 예수님은 그것을 아시고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셨지요. “야이로야 이 여인을 보아라! 믿음이 구원하지 않았느냐?” “염려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2> 희망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39= “어찌하여 우느냐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정말로 안 죽었다는 건가요? 아니지요. 죽은 것은 틀림이 없지만 잔다는 표현을 하심으로 깨어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말씀을 하신 거죠. 우리가 말하는 대로 “죽어서 참 안됐습니다.” “늦었습니다이렇게 말씀하셨다면 가족들은 더 이상 희망이 없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는 죽음을 잔다는 표현으로 많이 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죽었다는 말과 잔다는 말은 사실은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같은 말이라도 “죽었다” 하는 것과 “잔다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은 표현입니까? 잔다는 표현은 희망을 주는 긍정적인 표현 아니에요? 같은 것을 보면서도 사람에 따라서 표현이 달라지기도 하지요

 

가나안을 정탐한 12명에 대해서 여러분 아시죠. 10명은 부정적으로 보고 낙담하였지만 두 사람은 달랐습니다. 여호수아, 갈렙은 믿음의 눈으로 보았지요. 열 명은 “이제 우리는 죽은 파리 목숨이다이렇게 보고를 하였으나, 여호수아,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눈으로 보는가?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겁니다.

 

3> 능력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41= “달리다굼” 하셨는데요. “Talitha = 소녀야, Cumi = 일어나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엿볼 수 있지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고요. 말씀으로 바람과 귀신을 쫒으신 분이실 뿐 아니라 죽은 사람에게 “달리다굼하시므로 일으켜 살리신 분입니다

 

4> 사랑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43= “먹을 것을 주어라죽은 자를 살리실 뿐 아니라 인생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사랑의 말씀이죠. 오늘 우리는 파도를 재우시는, 자연을 마음대로 움직이시고, 영의 세계도 마음대로 다스리시고, 육신의 질병과 심지어 죽음까지도 다스리는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이 늘 우리 옆에 계시다면 무엇이 두렵겠어요? 모든 문제 해결의 능력은 주님에게 있습니다. 이런 예수님에게 기도함으로서 예수님의 도움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