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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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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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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 N. Dale Avenue Anaheim, CA 92801 (714) 360-3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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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29-31 예수님을 모시면? 지난 주일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드렸지요. 마가, 세례요한, 이사야, 말라기, 그리고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 하셨죠. 이뿐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볼 때 우리도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나 행동을 보면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아주 특별한 권위가 있음을 보게 되는데요. 이런 권위는 어디에서 온 걸까요? 1>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것입니다. 2> 스스로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삼위 하나님 가운데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스스로 사람과 다른 권세가 있으시죠. 그래서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전통에 따라 말을 하지만 예수님은 직접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렇게 말씀하실 수가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죠. 3> 진실한 삶에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과 삶이 일치했습니다. 여기서 권위가 생기죠. 언행이 일치하지 않으면 권위가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마가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의 권위를 보여주는 여러 가지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1> 시험받는 장면에서 입니다. 마가는 자세하게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에 대해서 기록하지 않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12=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몰아냈다’고 하는 말은 단순히 나가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이끌어 냈다는 말이죠. 강제로 시험받도록 몰아내셨다는 겁니다. 어떻게 성령께서 광야로 시험받도록 몰아내셨을까요? 약1:13= “하나님은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 하시느니라” 이런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들을 시험받도록 몰아세웠을까요? 그러나 히12:6=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여기 “징계한다.”는 말은 훈련한다는 뜻이죠. 하나님은 훈련하기 위하여 때로는 자기 백성을 테스트하십니다. 창22:1=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이렇게 말씀하죠. 시험에는 두 종류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는 죄에 빠지도록 유혹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복 주시기 위하여 믿음을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Test와 Temptation은 다른 거죠. 하나님이 유도하시는 시험은 축복을 위한 테스트죠.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마가는 정확하게 1장에서 이 둘을 구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1:12= “성령이 곧 예수를 몰아내신지라” 1:13= “사탄이 예수를 시험하였다” 이렇게 표현하죠.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이 땅에서 어려움과 시험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으셨지요. 친히 시험당하시고, 어려움에 처하심으로서 우리의 연약함을 경험하시고, 인간의 고통을 다 겪으셨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시험에서 승리하심으로 진정한 권위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2> 예수님의 설교에서 입니다. 22= “뭇 사람이 그의 가르침에 놀라니 이는 그의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힘이 있고, 권세가 있다는 겁니다. 율법을 가르치던 서기관들에게는 이런 권세가 없었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과 설교는 서기관들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설교와 가르침에는 권세가 있었습니다. 3> 예수님의 명령에서 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아무도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배와 그물, 가족을 버려두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따랐습니다. 1:1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두고 좇으니라” 20=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1: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들은 권위에 압도되어 바로 따랐지요. 귀신들도 예수님 앞에서 꼼짝을 못하죠. 귀신들은요. 예수님이나 예수님 말씀을 제일 무서워합니다. 찬송도 무서워하고요. 예수님을 노래하는 것을 제일 무서워합니다. 예수님의 권세를 알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많은 병자들이 따라다녔는데요. 오는 병자들을 일일이 고쳐 주셨습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수많은 병자들이 고침 받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아무도 항거할 수 없지요.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 본문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가셨습니다. 물론 베드로가 초대했겠지요. 그런데 베드로는 아마 공처가였던 것 같아요. 집에 들어갔더니 베드로의 장모가 있습니다. 아내가 좋으면 처가의 말뚝을 보고도 절을 한다고 하는 것처럼 장모님까지 모시고 사는 것을 보면 공처가든지, 아내의 말이라면 쩔쩔매는 쩔처가(?)든지 아무튼 장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모가 아파 누워있습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모르고 예수님 일행을 초대한 것 같은데요. 그러나 예수님을 초대한 것이 복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초대한 베드로의 집에 어떤 축복이 들어왔나요? 권세가 있으신 예수님을 모시는 가정에는 이런 복이 오는데요. 오늘 베드로가 경험한 축복을 저와 여러분들도 경험하기를 바라면서 오늘 이 말씀을 드립니다. 1>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어떤 청년이 평소에 존경하는 선생님을 찾아가 “제가 지금 다니는 직장에는 문제가 많은데 선생님! 문제가 없는 곳을 한번 소개해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은 “문제가 없는 곳이라...그래 한 곳이 생각났네. 차에 타게.” 선생님은 청년을 데리고 도심지를 빠져나가 한 공동묘지로 가서 “내리게! 여기는 사람들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으니 문제가 없다네. 여기가 어떤가?” 그랬다고 합니다. 여러분!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문제가 없는 곳이 없지요. 우리는 문제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제를 무작정 회피하기도 하고요. 문제가 있으면 직장이나 그 장소를 바꾸기도 하지요. 어떤 사람들은 아내나 남편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것이 해결 방법일까요? 그러면 행복해 질까요? 여러분! 문제가 있을 때 예수님을 초대하십시오. 예수님이 계시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요.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 집에 문제가 발생했지요. 누가 해결해 주셨어요? 제자들이 타고 가던 배에 풍랑이 일어나 다 죽게 되었지요. 누굴 깨웠습니까? 누가 찾아오셨습니까? 베드로의 장모님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셨으니 문제는 해결된 것 아닙니까? 우리의 문제 앞에서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인생에, 가정에 주인이 되시면 되는 거죠. 물론 상당한 기간 문제 해결이 지연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어떤 이유 때문에 지연시킬 수 있지요. 그러나 때가 차면 문제는 해결되지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예수님께 맡기십시오. 문제를 해결하실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문제가 반드시 해결됩니다. 2> 사랑을 경험하였습니다.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는 장면을 보면 참으로 다양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말씀으로, 어떤 경우에는 침을 바르고, 어떤 경우에는 흙을 이겨 바르시기도 하시고요. 오늘 본문에는 어떻게 하셨나요?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같은 내용을 기록한 마태복음을 보면요. “그의 손을 만지시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주 부드러운 touch 이죠. 예수님의 사랑이 흠뻑 묻어나오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 그냥 문자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과 말, 절과 절 사이에 흐르는 오감을 무시할 때가 많죠. 사실 이런 것은 거의 느끼지 못하고 성경을 보고 지나가죠. 그러나 그렇게 보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죠.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는 장면을 보면서 그냥 한 줄로 “예수님이 고쳐주셨다.” 그렇게 보고 지나가기에는 너무 무미건조하죠. 성경에 기록하지 않은 많은 이야기들과 대화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 많은 것들을 다 기록하려면 성경의 부피가 너무 방대하겠죠. 베드로의 장모는 예수님께서 손을 만지시며 고쳐주시는 그 장면에서 말할 수 없는 사랑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아플 때는 그렇잖아요. 따뜻한 손,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예수님을 모시면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3>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오늘 본문에서는 “저희에게 수종드니라”고 되어 있지만요. 마태복음에서는 “예수에게 수종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고쳐주셨는데, 문제를 해결해 주셨는데, 어떻게 섬기지 않을 수 있겠어요?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식사 대접 한번으로 끝났겠어요? “수종을 들었다”는 말은요. 헬라 말에는 진행형입니다. 계속해서 섬겼다는 거죠. 남은여생을 섬겼을 겁니다. 눅8:1-3=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 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아마 여기에는 베드로의 장모도 포함되었을 겁니다. 여러분! 권세 있으신, 능력 있으신 예수님을 모셔보세요. 문제해결을 받습니다.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셔서 이런 축복을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