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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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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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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 N. Dale Avenue Anaheim, CA 92801 (714) 360-3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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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9-11 예수님을 증거한 사람들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로마 사람들을 상대로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예수님을 “섬기는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의 요절을 10:45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바로 앞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는데요. 예수님은 이 말씀대로 종처럼 낮아지셔서 종의 삶을 사셨고, 그리고 대속의 죽음으로 삶을 마감하셨지요. 그런데 사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오늘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밝히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말하고 있어요? 1> 마가입니다. 마가는 1절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두 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첫째는 마가로 이것은 로마식 이름이고요. 다음은 요한입니다. 이 이름은 유대식 이름입니다. 그래서 마가 요한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지요. 마가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마리아로 다락방을 모임장소로 제공했고요. 120명의 신자들이 모여 기도하다가 오순절의 놀라운 체험을 그의 집에서 하기도 하였습니다. 마가의 외삼촌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믿음의 거장 바나바죠.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관을 지냈고, 바울을 따라 선교하다가 중도에 포기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다시 바울과 베드로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지요. 오늘 1절의 말씀을 보면 그 마가의 신앙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우리는 이 말을 쉽게 생각하지만요. 그 당시 마가가 이 성경을 쓸 때만 해도 이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지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려면 어쩌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내어 놓고 믿기가 어려운 때였지요. 초대 성도들이 왜 감옥에 갇히고, 동굴에서 살아야 했어요?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라고 하는 바로 이 고백 때문이었지요. 우리가 아는 대로 초대교회 성도들이 암호로 사용했던 물고기 그림이 있습니다. 이것은 크리스천이라는 암호였는데요. 이 말은 헬라어 Ιησους Χριστος Θεος υιος Σωτηρ의 첫 자를 합친 것인데요. 이것을 합치면 “익두스” 물고기라는 단어가 되지요. 물고기 그림으로 서로의 신앙을 확인한 겁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고백을 하면 순교를 각오해야만 하는 그런 시대에서 마가는 이런 고백을 마가복음 서두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겁니다. 마가는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선지자들입니다. 이사야와 말라기 선지자죠. 마가는 이 두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800년 전의 사람이고, 말라기는 500년 전의 선지자로 서로 300년의 간격이 있는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들은 수 백 년 전부터 예수님의 사역을 예언하고 예수님을 소개하였지요. 3> 세례요한입니다. 오늘 마가는 말3:1절과 사40:3절을 인용하면서 세례요한과 예수님을 각각 소개하고 있는데요. 세례요한은 무엇을 위해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까? 그는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고 예비하는 사람이라고 하죠. 이 세례요한이 외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죄 용서이고요. 죄의 용서를 위해 회개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였습니다. 여러분! 회개가 무엇입니까? 참된 회개는 죄를 깨닫고, 거기서 끝나면 안 되는 거죠. 마음이 변해야 하고, 생활 자체가 고쳐져야 합니다. 회개라는 것은 헬라말로 방향을 바꾸는 것을 말하는 건데요. 말만 고치고, 생활을 고치지 않으면 그것은 회개가 아니죠. 바울을 보세요!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려고 가던 사람이 이제는 예수를 전하는 사람이 되었지요. 이것이 회개입니다. 회개하고도 여전히 사람들을 죽이러 간다면 그것은 회개가 아니지요. 마3:7=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고 하지요. 참된 회개는 겉모양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속마음을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복음, 바른 설교는 또한 어떤 설교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바로 전하는 이것이 바른 설교의 기준이 되는 겁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전했는데요.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전하였습니까? 1> 자신보다 먼저 계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요1:30= “그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사실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사람이죠. 그런데도 예수님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계셨던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2> 자신보다 탁월하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할 수 없다고 하죠.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크신 분인가를 우리에게 짐작케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요한의 겸손함을 또한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정말로 높이는 그리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모습을 우리가 본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3> 자신보다 능력이 위대하다고 하였습니다. 7=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세상의 그 어떤 사람보다 능력이 있으신 분이라는 겁니다. 사실 예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죠. 성부 하나님과 더불어 창조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간혹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라도 하실 수가 없을 거야!” “예수님이 어떻게 이것을 할 수 있겠어?”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못할 때가 있죠. 여러분! 하나님이 못하시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4> 성령으로 세례를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은 물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성령세례를 준다는 겁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세례를 줍니다만 물세례보다 더 중요한 세례는 바로 성령세례죠. 여러분! 성령세례가 무엇입니까?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거듭나게 하는 것을 말하죠. 그러므로 마음에 거듭남이 없이, 속사람의 변화 없이 세례만 받는 것은 의미가 없죠. 속사람의 변화가 중요한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지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있었을까요? 예수님이 무슨 죄가 있어서 세례를 받았겠어요? 아니지요. 그런데 왜 받으셨을까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공적 출현을 알리는 방편으로 삼으신 거죠. 30년을 나사렛에서 무명인으로 사시다가 이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시려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분기점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부친에게 세례를 주게 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부친이 늦게 믿고, 아들 교회에 나오니까 어떻게 하겠어요? 다른 교회에 가서 세례를 받고 오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직접 세례를 주는데 어려움이 있었지요. “내가 누구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이렇게 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아버님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버님이신 누구누구에게...” 이러기도 곤란하고요. 여러분도 어려움이 짐작되시지요. 또 부친이 아들에게 세례 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이렇다면 예수님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다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어요? 아니죠. 여기에서 예수님의 엄청난 겸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만큼 겸손하셨던 것입니다. 마3:14=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예수님은 솔선수범하여 세례를 받으시므로 오늘 우리에게도 본을 보여 주신 겁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지요? 여기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지요. 1> 하늘이 열렸습니다. 본문에는 하늘이 갈라졌다고 표현했고요. 마태복음에는 하늘이 열렸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거죠. 2>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본 사람이 누구였다고 하였습니까? 요한이 본 것도 아니고, 청중들이 본 것도 아니고요. 주어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 보면 세례요한도 그 사실을 보고 자신이 세례를 준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알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곳을 종합하면 예수님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 때 일어난 놀라운 사건을 보았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부인 [순교자 져스틴]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셨을 때 요단강 주변 하늘에 큰 불길 같은 빛이 있었다.”고 하였고요. 고대 전승에도 “하늘에 밝은 광채가 있었다.”고 합니다. 기적이죠. 3> 하늘에서 음성이 흘러 나왔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리라”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 하나님의 계시가 중단되었지요. 약 400년간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았지만 이제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 또한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지요.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므로 성령께서도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나타내셨고요. 성부 하나님께서도 음성을 발하심으로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밝혀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마가 자신이 밝히고 그리고 구약의 선지자들이 증거하고, 세례요한이 보고, 듣고 전하였고요. 그리고 가장 확실한 것은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도 증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얼마나 신기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 또한 예수님의 증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