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530 N. Dale Avenue       Anaheim, CA 92801        (714) 360-3022

12:13-14                                                                 사람의 본분은?

 

11:7절 말씀을 보면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고 하였는데요.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을 사는 동안 즐거움을 허락하셨다고 합니다. 8=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 인생을 즐기며 살라고 하셨지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가운데 첫 번째 고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영원히 즐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즐겁지 않습니까?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삶을 즐길 수 있는 특권을 주셨지요. 그러나 항상 즐거운 일만 있어요? 안 그렇죠. 살다보면 슬픈 일도, 근심되는 일도 있습니다. 출생하는 그 시간부터 걱정과 근심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8= “그러나 캄캄한 날이 많으리니 그 날을 생각할지로다.” 그래서 10절을 보면, “근심을 네게서 떠나게 하라”고 하죠. 여러분! 근심거리가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근심이 우리를 떠나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왜 근심이 생길까요? 근심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는데요

 

1> 죄 때문입니다.

 

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지은 다음부터 걱정, 근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창4장을 보면,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 근심으로 자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가인의 비참한 심정을 읽을 수 있지요. 죄가 근심하게 하지요.

 

2> 재물 때문입니다

 

19:22에 보면,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가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한 청년이 예수님께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냐?”고 물었고, 예수님은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말씀을 듣고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근심과 소유는 비례합니다. 소유가 많아지면 그에 비례해서 근심도 많아지게 되지요. 그러나 믿음과 근심은 반비례합니다. 믿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근심은 줄어들게 되고요. 믿음이 떨어질수록 근심덩어리는 점점 커지게 되는 겁니다. 따라서 근심을 떨쳐버리려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딤전6:10을 보세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돈을 사랑하여 믿음을 떠나면 근심도 많아지는 법이죠.  

 

3> 가족관계 때문입니다.

 

26:34-35절을 보면, 에서가 40세에 불신결혼을 하지요.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는 아들 에서 때문에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7:21= “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 17:25=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 바로 에서와 같은 아들이죠. 요즘 자식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 남편 때문에 근심하는 아내, 아내 때문에 걱정하는 남편, 형제 문제로 근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족이 좋지만 근심거리를 주기도 하지요.

 

4> 지식 때문입니다

 

1: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지식과 근심도 비례하지요. 어떤 조사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고등학교 졸업 이하보다는 대학교 졸업 이상이 더 많았고요. 중산층 이하보다는 그 이상이 더 많고요. 시골사람보다는 도시사람들이 더 고생한다는 겁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학력이 높고, 세상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고민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근심이 많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 어떻게 근심을 물리칠 수 있습니까?

                             

1> 철저하게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근심은 죄와 관계가 있지요. 집을 떠났던 탕자의 근심은 집으로 돌아올 때 해결되었고, 삭개오도 토색한 것을 갚음으로 근심이 물러갔지요. 바르게 회개하면 근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2> 행복의 절대조건을 하나님께 두는 겁니다

 

돈에 행복의 조건을 두면 근심이 떠나지 않습니다. 소유와 근심은 비례하기 때문이죠. 사람에게 행복의 조건을 두어도 그렇습니다. 근심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벧전5:7절 말씀을 보면,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시37:5-6=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시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께 나의 삶 전체를 맡기고, 행복의 절대조건이 주님에게 있다는 사실을 믿으면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솔로몬은 전도서를 마치면서 인생의 참 본분이 무엇임을 바로 깨닫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지요. 그가 깨달은 것이 무엇일까요? 이것이 전도서의 결론이지요.

 

1> 하나님 없는 곳에는 모든 것이 허사라는 겁니다.

 

1:2절을 보면요. 한 절에 “헛되다”라는 말이 5번이나 나오고요. 전도서 전체에서는 “헛되다”란 말이 37번 나옵니다. 전도서에서 말하는 헛된 것을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요. 하여튼 하나님이 없는 모든 것은 헛된 것입니다. 이것을 “해 아래의 모든 것은 헛되다.”로 표현한 거죠.

 

2>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최고라는 겁니다.

 

12:1= 늦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하였고요. 12:7= 죽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본문 13절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고 하죠. 13-14절에서 솔로몬은 우리에게 3가지 중요한 것을 가르치죠.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문이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기 때문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지 않습니까?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도 좋아하시지만 우리에게 더 좋은 일들이 생기는 겁니다.

 

2:19=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최고의 선이 되는 것이고요.

1:7= 지식의 근본이 되는 것이고요.

15:33= 하나님을 경외하면 존귀를 가져오고요.

33:6= 재물의 축복을 받는 길이라고 합니다.

32:39= 후손이 축복받는 길이고요.

15:16= 행복의  원천이 되고요.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자는 실패하지 않고(31:42),

집이 왕성해지고(1:21), 원수의 손에서 건짐을 받게 된다고

(왕하17:39)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런 축복을

받는다고 말씀하는데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둘째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고 합니다.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거지요. 1편을 우리가 잘 알지요. 어떤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는 사람은 순종의 삶을 삽니다. 1:7절을 보세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에요? 미련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본분을 모르는 사람이지요. 자기위치를 모르는 겁니다. 13=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이 말은  이렇게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전부이니라.” 무슨 말이죠? 이것을 빼면 사람이 사람노릇을 못한다는 거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 아니겠어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노릇을 바로 하고 사는 거죠. 이것이 전도서의 결론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면, 우리의 일생을 하나님께 내놓는다면, 어떤 심판과 어떤 상을 받을까요? 찬송가 545장 “하늘가는 밝은 길이” 찬송 3절에 보면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사실 그렇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떻게 영접을 받겠으며,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어요? 일의 결국을, 인생의 결론을 솔로몬을 통해서 깨달았으니 이제부터는, 우리의 생이 끝나기 전에 세상을 헛되게 살지 말고, 오직 우리 인생의 본분을 바로 알아 하나님만 경외하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솔로몬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전도서의 결론이죠.

 

로마의 어느 황제는 인생을 엄숙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얻기 위하여 매일 아침 신하가 문안할 때마다 이렇게 인사하도록 명령했다고 합니다. “폐하시여!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황제는 신하의 이런 아침 인사를 통해 늘 죽음을 인식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어느 그리스의 철인은 제자 중 하나가 “짧고 허무한 세상에 우리가 태어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였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영원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허무한 것이 많습니다. 솔로몬의 말처럼 헛되고 헛된 것이 세상살이죠. 그리고 짧은 생을 살다가 갑니다. 그러나 이런 허무를 통해서 비로소 영원의 의미를 배우죠. 세상의 허무를 경험함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영원의 값어치를 바르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 인생의 전부입니까? 인생의 목적입니까?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지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심판이 있음을 알고 미리 준비를 잘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바르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