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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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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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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 N. Dale Avenue Anaheim, CA 92801 (714) 360-3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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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9:11-12 믿음의 길로 갑시다. 머리 좋고, 많이 노력한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죠. 이 세상에는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4가지 변수를 말씀하고 있는데요. 1> 빠른 경주자라고 늘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미국의 수영선수, 세계적인 스타죠. 펠프스가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죠. 지난 번 올림픽에서 8관왕을 차지했지만 모든 대회에서 이긴 것은 아닙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육상선수라도 그날 컨디션이 안 좋다든지, 감기 몸살을 앓는다면 질 수도 있는 겁니다. 이번 US Open 골프를 보세요. 타이거 우즈가 우승 못했지요. 무명의 선수가 1등을 했습니다. 삼손을 보세요. 힘이 장사입니다. 아마 씨름을 하든지, 레슬링을 하든지 세계 챔피언을 먹었을 겁니다. 그러나 눈알이 뽑히고, 머리털이 밀리게 되었을 때 비참한 수모를 당하게 되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2> 유력자라고 전쟁에서 늘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전쟁은 역시 군사력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군인이 많고, 화력이 강한 쪽이 이길 승산이 많지요. 그러나 여기도 변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군사력과 화력을 잘 이용하느냐가 중요하고요. 그날 날씨도 무시를 못하죠. 날씨가 너무 춥다든지, 비가 너무 많이 쏟아진다든지, 전쟁하기에 어려운 일들이 생기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죠. 3>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4>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 두 가지는 같은 거죠. 머리 좋고, 지혜가 많고, 똑똑하다고 부자가 되고, 재물을 많이 모으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변수가 많고요. 그리고 많은 올무들이 있습니다. 누구든 올무에 걸리면 곤욕을 치르게 되어 있지요. 12=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 역경이라고 하는 것이 있지요. 자기 힘으로 빠져 나올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을 때, 낚시 바늘에 걸리죠. 빠져 나갈 방법이 있습니까? 새가 그물이 완전히 걸리면 어떻게 빠져 나가겠어요? 우리도 살아갈 때 여러 가지 올무들이 있는데요. 어떤 올무냐에 따라 방법을 다르게 써야 합니다. 1> 때로는 하나님의 연단의 올무가 있습니다. 믿음을 연단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쳐놓으신 올무가 있죠.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럴 때는 세상 욕심을 버리고, 신앙으로 자신의 인격을 다듬어 나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씀으로 이겨내야 하죠.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연단은 기한이 있어요. 기한도 없이 하나님이 연단하지 않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무한정 어려움을 당하도록 버려두지 않습니다. 때가 차면 건져주시고, 회복시켜 주시죠. 고난의 기간이 끝나면 새로운 길을 열어주십니다. 2> 세상 유혹으로 오는 올무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든 올무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요셉을 보세요.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유혹의 그물이 쳐 졌습니다. 어떻게 했어요? 옷을 벗어던지고라도 빠져 나오지 않습니까? 물론 그 벗어던진 옷 때문에 감옥에 갔지만 하나님은 상황을 아시지 않습니까? 3> 악한 사람이 쳐 놓은 올무가 있습니다. 악한 사람에게 협박을 당한다든지, 납치를 당했다든지 이럴 경우에는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 기도하면서 때를 노려야 합니다. 이럴 때 함부로 대든다든지, 약을 올려서 화를 자초하지 말아야 합니다. 화를 내고, 약을 올린다고 악한 사람이 풀어주지 않지요. 오히려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하고 기다리다 보면 기회가 오는 겁니다. 그 때 빠져 나와야 하죠. 아프가니스탄에 붙들렸던 한국의 봉사단 사건을 기억하시죠? 지난 수요일에 분당 샘물교회 박은조 목사님을 만나 운동을 함께 했습니다만 그 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잡혀있는 교인들 때문에도 고통스러웠지만 국내외 네티즌들, 그리고 사이비 종파들의 기독교 비방 등 수많은 손가락질 속에 방법이 뭐에요? 하나님께 기도하는 거죠. 어떻게 말로, 사람의 지혜로 벗어나겠어요? 세상의 재난을 피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대개 10년이 지나면 복을 받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니까요. 그러나 교만하고, 말씀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10년이 지나면 더 탐욕스럽고, 더 교만하고, 더 성질이 악해져 버립니다. 이런 사람이 복을 받겠어요?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하고요. 인내가 필요합니다. 올무가 있고, 장벽이 있고, 장애물이 있어도 인내가 필요하죠. 승리자가 되려면, 이기는 자가 되려면 반드시 필요합니다. 무엇이요? 믿음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반드시 빠른 사람도, 유력자도 아니고 지혜자나 명철한 사람도 아니라고 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고 낙심하거나, 포기하거나 하던 것을 그만 두는 것이 아니죠. 구약 성경을 보세요. 하나님을 끝까지 바라보고 믿음의 길로 가서 성공한 사람이 있지요. 1> 노아를 보세요. 창6:4에서 하나님은 방주를 지으라고 하십니다. 비 올 때가 아니죠. 수 십 년간 홍수하고는 거리가 멀었죠. 세상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를 갔습니다. 비상시국이 아니었죠. 평화로울 때였습니다. 이런데 방주를 왜 지어야 합니까? 세상 사람들이 노아의 말을 믿었나요? 미친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노아는 묵묵히 방주를 지었습니다. 노아는 결국 성공자가 되었지요. 온 가족을 구하지 않았어요? 여기서 배울 것이 있습니다. 노아가 가족을 구하는 성공자가 된 것의 첫걸음은 무엇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고 순종한 겁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비웃고, 또 시대와 상황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는 겁니다. 포기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말씀대로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방주를 절반 정도 짓다가 비도 안 오고, 주변 사람들의 여론도 안 좋고, 그래서 중단했다고 해봐요. 홍수가 들이닥쳤을 때 재난을 피할 방법이 있었을까요? 아니죠.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수장되었을 겁니다. 2> 욥을 보세요. 욥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평소 같으면 이 말이 그렇게 위대하지 않을 수 있지요. 당연한 소리 아닌가요? 믿는 사람이라면, 신앙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죠. 그렇지만 지금 상황이 그런 안일한 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욥이 당한 시련이 어떠했습니까? 그 많던 재산이 하루아침에 다 달아났지요. 강제로 빼앗긴 겁니다. 욥1:14-17절입니다. “사자가 욥에게 와서 고하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양과 종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갈대아 사람이 세 떼를 지어 갑자기 약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더니 거친 들에서 대풍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무슨 이런 봉변이 다 있습니까? 평생 모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날리게 되었고요. 자식 농사도 얼마나 잘 지었어요? 그런데 하루아침에 태풍이 불어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다 잃게 되었습니다. 욥2:7-9절을 보세요. “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이런 가운데 욥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아내를 원망하지도, 사람을 붙잡고 하소연하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정도를 간 겁니다. 끝까지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지요. 3> 느헤미야를 보세요. 무너진 조국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요. 방해 공작이 많았습니다. 사람의 지혜로 풀기 어려웠습니다. 간단하게 얽힌 실타래는 풀 수 있지만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타래는 풀 수가 없습니다. 느헤미야가 당한 어려움이 바로 이런 것이었지요. 느2:19절을 보세요.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기로” 반대 앞에서 포기하였습니까? 반대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지요. 뒤에도 여러 번 나옵니다. 그러나 어려움 앞에서 느헤미야는 믿음으로 반응을 하죠.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도 없다 하였느니라.”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할 일을 하지 않습니까? 4>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고 하지요. 마침내 성공자가 된 겁니다. 우리의 구원을 성취하셨지요. 어려움을 참고 인내하는 자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고 믿음의 정도를 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이런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