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530 N. Dale Avenue       Anaheim, CA 92801        (714) 360-3022

9:1-10                                                                   즐겁게 사는 인생

 

잠언과 전도서는 인생에 대한 교훈을 다루고 있습니다. 잠언은 교훈적이고, 전도서는 고백적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오늘 주신 말씀에서 삶의 진실을 보게 하는 열쇠를 우리에게 제공하는데요. 그 열쇠가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1=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본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미래임이니라.” 이 말씀은 모든 인생의 삶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거죠.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간섭하신다는 겁니다. 이걸 모르고는 인생의 진실을 볼 수가 없지요. 우리는 미래가 불확실해서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녀인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죠. 왜냐하면 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미래를 하나님이 주장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죠. l0:28-2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7: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넘어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하나님의 자녀라도 넘어질 때가 있죠. 그러나 아주 넘어지지 않습니다. 왜요? 하나님 아버지의 손이 우리를 붙드시기 때문이죠. 이 사실을 믿습니까? 7:9=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고백은 이렇게 구체적이죠. 오늘 우리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 때문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하나님 손 안에서 우리의 삶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삶을 볼 때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삶의 진실을 보게 하는 첫 번째 열쇠는 하나님의 주권을 통해서 삶을 보는 것입니다.

 

둘째로, 죽음은 확실하다는 겁니다.

 

사람이 한 번 죽은 것이 정한 이치라고 했는데요. 그러나 이 죽음이 오는 것을 실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지요. 3절을 보세요.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빼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필경은 죽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인데요. 사람이 지혜롭게 사는 길 가운데 하나가 죽음을 기억하며 사는 겁니다.

 

신약성경 야고보서의 경고를 기억합니까? 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리켜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뜻이죠? 종말에 직면하면서 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나 신경질적인 삶이 아니라 내 삶이 결산되는 그 날이 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는,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있다는 겁니다.

 

3=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사람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다고 말씀하고요. 한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어요? 숨어있는 악이 있지요. 이 악이 작동을 시작할 때 미친 마음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아무리 선한 사람에게도 악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칼빈은 인간의 전적 타락을 말했지요. 다만 전적으로 부패한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새 영을 주시고, 새 마음을 심어 주시죠. 그러나 잊지 않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다고 해서 우리 마음속에 있던 악한 성품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악한 성품이 그대로 있지요. 옛 사람이 아직도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갈등을 하지요. 심각한 갈등 아닙니까? 내 안에 거하신 하나님의 성령은 이 새로운 성품을 통해서 옛 성품을 온전히 지배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단은 우리 안에 있는 옛 성품을 통해서 이 새 성품을 제압하기를 원하죠.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른다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성령 충만함에서 떠나게 되면, 누구나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게 되죠. 신자라고 하지만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되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별로 다른 것이 없이 살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부정적인 인생에 대한 선언으로 끝내지 않고 긍정적인 내용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살아있음에 대한 감격이 있습니다.

 

4= “모든 산 자 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산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는 말은 본래 아랍 사람들의 속담이었는데 성경 기자가 인용한 것입니다. 사자가 덩치 크고 밀림의 왕자이기는 하지만, 죽은 사자는 산 개보다 못하죠. 무슨 말을 하기 위해서 이런 표현을 썼을까요? 그것은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격 아니겠어요? 사람도 살아 있을 때 귀하지, 생명이 떠나 보세요. 시체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던 사람도 생명이 떠나면 같이 있을 수 없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다는 이 감격을 말씀하는 겁니다.

 

둘째는, 삶에 대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에 인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죠. 그런데 이것을 오해하면 잘못된 사상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오로지 즐기는 것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으려는 쾌락주의나 반대로 인생을 즐기려는 그 자체가 악이라고 해서, 삶에 대한 모든 즐거움을 거절하고 자신을 자학하면서 사는 금욕주의가 있는데 이것은 모두 비성경적이죠.

 

여러분, 우리의 육체는 악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인간 속에는 악한 성품이 있지요. 그러나 성경은 육체를 악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육체도 귀합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라고 말씀하지요. 그러므로 성전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적당한 휴식과 영양섭취 그리고 운동을 통해서 우리의 육체를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청지기적인 의무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삶을 즐길 수 있는 특권이 있지요. 즐거움을 위한 즐거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는 삶을 즐길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 삶의 특권이 무엇입니까?

 

1> 먹고 마시는 즐거움입니다.

 

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여러분, 먹고 마실 수 있는 즐거움을 감사하십시오. 지금 이 세상에는 먹고 싶어도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어떤 분은 먹을 것은 많은데 위장의 병 때문에 먹을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을 다시 한 번 보세요.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여기에서 강조된 것이 무엇입니까?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먹고 마실 때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이죠. 마음속에 기쁨과 평안이 있을 때 음식이 맛이 있지 않습니까? 이 즐거움을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 있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8= “너희의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 유대철학에서는 인격의 외적인 특성으로 두 가지를 강조했는데 하나는 향기로움이고, 다른 하나는 깨끗함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아름답게 하고 살아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특히 여자 분들이 집에서는 화장을 안 하다가 밖으로 나갈 때만 화장을 하는데 사실은 반대로 해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남편 보기에 좋게 해야지 왜 남들만 신경 씁니까? 집에 있을 때는 되는 대로 하고 있다가 밖에 나갈 때만 화장을 하는데, 사실은 그보다 남편이 집에 돌아올 때 화장을 해야죠. 그리고 성경은 외적인 것만 강구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지요. 우리 마음속에 거룩함이 있고, 주님의 향기가 밖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특권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움이죠.

 

3> 가정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거워할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남편과 아내가 즐겁게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특권 아니겠어요?

 

4> 일에 대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10=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우리가 수고의 땀을 흘리며 일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입니다. 여러분! 일을 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 보셨습니까? 이 세상에는 일하고 싶어도 건강이 허락되지 않아서 일하지 못하는 분이 얼마나 많습니까? 일할 수 있는 건강은 있는데 일자리가 없어서 일하지 못하는 분들 또한 얼마나 많습니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요, 특권인 것을 알고

기쁜 마음,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살후3:10절에서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였지요. 일을 기피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는 겁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일은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건강과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성도의 특권입니다. 여러분의 매일 매일의 삶을 주 안에서 즐겁게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