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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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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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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 N. Dale Avenue Anaheim, CA 92801 (714) 360-3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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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7:18-24 시련은 은총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형들의 관점에서 볼 때 미움을 받을 만 했지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고요. 형들보다 항상 더 좋은 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형들의 잘못을 일일이 아버지에게 일러 바쳐서 형들이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요셉을 싫어했는데요. 형들은 요셉에게 말도 친절하게 하지도 않았고요. 기회만 있으면 요셉에게 앙갚음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고 서로 아껴야할 형제들끼리 이게 무슨 꼴입니까? 그러는 가운데 형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일이 있었습니다. 요셉이 두 가지 꿈을 꾸었는데요. 형님들의 곡식단이 자기 것을 보고 절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안 가르쳐 주어도 형들은 알았습니다. 자신들이 동생 요셉을 섬겨야 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해, 달, 11별들이 요셉을 향하여 절을 했다는 겁니다. 이건 형들의 가슴에 염장을 지르는 소리죠. “이런 버릇없는 녀석을 봤나!” “부모님까지 너를 섬겨?” “이런 녀석은 살려둬서 안되지!” 기회만 오면 없애야지!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요. 어느 날 기회가 왔습니다. 집을 멀리 떠나 양을 치는 곳까지 요셉이 찾아오는 겁니다. 18= 저기 꿈쟁이 요셉이 오는구나! 죽여 버리자! 20= 요셉을 죽여 구덩이에 넣어버리자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짐승이 잡어 먹었다고 하자! 형들의 얼굴에는 살기가 돌았지요. 분위기가 살벌해졌습니다. 그때 르우벤이 죽이지는 말고 구덩이에 그냥 던져 버리자고 제안하였지요. 구덩이는 물을 저장하는 곳인데요. 입구는 좁지만 안은 넓어서 빠지면 살아나올 수 없는 곳이죠. 17세의 소년이 그 속에서 굶어 죽을 것을 생상해 보세요! 24= 구덩이에는 물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만다행이죠. 물이 많았으면 금방 죽었을 겁니다. 25= 형들의 무자비함을 볼 수 있습니다. 동생을 구덩이에 던져놓고 태연하게 앉아 밥을 먹고 있어요. 사람을, 그것도 동생을 사지에 던져놓고 어떻게 다리 뻗고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습니까? 요셉이 구덩이 안에서 가만히 있었겠어요?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을 겁니다. “형님들! 제발 건져 주세요.” 아마도 형님들의 이름을 차례로 불러가며 울부짖었을 겁니다. 그래도 형들은 들은 척도 안하고 밥을 먹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때 요셉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요? 얼마나 마음에 상처가 되었을까요? 평생 잊을 수 없는 원한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이를 갈았지 않았을까요? 창42:21절을 보시면요. 애굽의 총리로 있는 요셉 앞에서 그 총리가 자신들의 동생인 줄도 모르고 하는 형들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는도다.” 요셉이 구덩이에 빠졌을 때 조용히 있었겠어요? 살려달라고 고함을 지르고, 애걸하였다고 합니다. “그때 모르는 척 했다가 지금 그 고통을 우리가 받는구나!” 이런 형들의 고백이잖아요.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미디안 상인에게 노예로 팔았습니다. 인신매매를 한 거죠. 노예로 끌려 다니면서 요셉이 얼마나 많은 수모를 겪었을까요? 노예시장에 끌려 다니는 노예들을 한번 상상해보세요. 며칠 만에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갔는지는 모르지만 애굽으로 끌려가자마자는 아닐 것입니다.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간 거죠.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요셉 -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요셉이었고, 채색옷에, 좋은 음식, 좋은 침대에, 가장 사랑받던 아들에서 노예로, 심한 노동을 하면서 잠자리, 먹는 것, 좋았겠어요? 하루하루가 지옥같은 생활이었을 것이고요. 나중에는 감옥에까지 가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요? 더 이상 추락할 수 없는 자리까지 내려가도록 왜 두셨을까요? 요셉은 분명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지요. 그런 요셉이 어디까지 추락했어요? 죽을 뻔 하였고요. 구덩이에 쳐 박히는 수모를 당하였고, 노예로 팔려가 노예 시장에서 전전긍긍 하였고요.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오해를 받아 감옥에까지!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이 추락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이 낮아질 때 하나님은 그냥 계시지 않지요. 구약에서 욥을 보십시다. 욥이 어디까지 추락하였습니까? 재산을 다 잃었고요. 자녀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자신의 몸에 고칠 수 없는 병이 들었지요. 간혹 자연재해로 재산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통 비극이 아니지요. 그러나 욥은 이보다 더 큰 재난을 당하였습니다. 아내도 이제는 남편을 무시합니다. 사랑하는 친구들까지도 듣기 싫은 소리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을 어떻게 세워주시고, 그를 올려주셨어요? 친구들을 책망하시고, 재산은 이전보다 배로 올려주셨고요. 자녀도 10명을 더 주셨는데 이전 자녀들보다 훨씬 예쁘고 좋은 자녀들로 보상을 해 주셨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내려가게만 하시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끌어 올려 주신다는 겁니다. 히스기야 왕을 봅시다. 앗수르 왕이 공격을 하였을 때 마치 풍전등화와 같았지요. 하나님 믿는 나라의 왕으로, 보통 창피를 당한 게 아니지요. 결국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185,000명의 앗수르 군사를 무찔러 주셨지요. 후일에 절망적인 병이 들었지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죽을 준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도 그는 벽을 향하여 기도하였지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어요? 15년을 연장해 주셨지요.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겁니다. 사그락, 메삭, 아벳느고를 보세요. 신앙을 지키려다가 풀무불에 들어가게 되었지요. 이것이 무슨 불행입니까? 태워 죽임을 당할 위기에 빠졌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어요? 죽게 내버려 두셨나요? 사자굴에 빠진 다니엘을 하나님이 어떻게 지켜 주셨습니까? 요셉이 구덩이에 던져졌을 때,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요셉을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신약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베드로를 보세요. 물에 빠지게 되었을 때 그냥 빠져 죽도록 버려 주셨나요? 예수님을 부인하며 신앙적 무력감에 빠졌을 때 그냥 두셨나요? 다시 옛 직업으로 돌아갔을 때 그냥 그렇게 살도록 두셨나요?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하셨어요? 수 없이 매를 맞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을 때가 있었지요. 사도 요한도 그렇습니다. 밧모섬으로 유배를 갔지요. 그곳은 뱀들이 집단적으로 서식하는 곳인데요.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입니다. 얼마나 고생을 했겠어요? 그러나 그곳에서 요한은 무엇을 체험하였습니까? 하나님의 계시, 요한 계시록을 쓰게 되었지 않습니까? 요한은 가장 장수하는 제자가 되었고요. 요한1,2,3서도 남기게 되었지요. 구약이나 신약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면요. 끝없이 추락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그냥 주시지 않으시고, 때가 되면 하나님이 끌어 올려서 귀하게 사용하셨다는 겁니다. 요셉도 그랬지요.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말로 할 수 없는 수모를 당했지만요. 하나님께서 그냥 버려두시지 않았습니다. 올려 애굽의 총리까지 되게 하시고, 굶어 죽게 된 형들과 부모님들까지 살리게 된 겁니다. 지금 상황이 어렵고, 여건이 Down되었다고 낙심하지 맙시다. 그럴수록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하고 이겨내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부활의 영광 이전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유대인들에게 버림을 받았고요. 제자들에게까지 배신 당하셨잖아요. 그러나 마침내 부활하셨고요. 하나님 우편에까지 올라가셨고, 만인이 그에게 무릎을 꿇게 되지 않았습니까?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십자가는 고난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는 길에는 고난도 있습니다. 시련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싫어하면 제자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련은 축복의 길로 가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요셉이 감옥으로 내려간 것은 총리의 자리로 가는 길이었지요. 내려가지 않았으면 올라가지 못했을 겁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에 고난이라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시련의 생애였지요. 사탄은 자주 예수님이 가역을 시작할 때부터 시험하였고, 예수님의 사역을 힘들게 만들었지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하실 때도 사탄은 시험을 하였지요. 세례를 받으신 직후에도 시험이 왔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우리의 세례와 다르죠. 우리는 죄인으로 받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으로 세례를 받으셨지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자 성령이 하늘로부터 비둘기처럼 내려 오셨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바로 그 때도 시험을 하는 겁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방심할 때 그 때가 바로 시험의 기회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또한 40일을 금식한 직후에도 시험이 왔지요. 40일을 금식하며 기도하였을 때 얼마나 은혜가 충만하였어요? 그럴 때도 사탄은 유혹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시험이 올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약의 잠언서”라고 불리는 야고보서는 우리의 삶에 닥치는 시련과 유혹을 극복해 나가는 길을 제시해 주는데요. 시험이 올 때 어떤 자세를 가지라고 합니까? 우선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라고 합니다(1:2). 그리고 기도하라고 권합니다(1:5). 또한 인내하라고 합니다(1:12). 무조건 참고,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능동적으로 성도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 기독교적인 인내죠. 칼빈은 “시련은 제2의 은총이다.” 라고 했습니다. 시련과 시험은 이 세상에 있는 자기 백성들을 거룩한 자녀로 훈련시키시고 성장시키는 하나님의 종합 교육이죠. 이 훈련에 단련될수록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축복이 풍성하게 주어질 것입니다. 어렵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힘차게 걸어갑시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올려주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처럼, 욥처럼, 요셉처럼 하나님께서 올려주실 것입니다. 그 때까지 인내하고 승리를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