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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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2-15                                                                    백향목 같이

 

성경에서 백향목은 힘의 상징으로, 호화의 상징으로, 그리고 영광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 나무의 특징은 곧고 굵으며 단단하고 크게 자라면서도 향기가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 성전의 기둥으로 사용했습니다. “연수로 나이를 세지 않고, 세기(century)로 나이를 센다.”는 말이 있는데요. 바로 백향목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만큼 이 나무는 오래 사는 건데요. 본문에 보면 의인이 바로 이 백향목과 같다고 합니다. 14-15=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요. 저도 요즘 느끼는 것이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겁니다. 90:10=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20세를 산 모세의 고백이죠. 고생과 슬픔에 젖어 어렵게 보낸 70, 혹은 80, 그것도 지내놓고 보면 날아간 것처럼 빨리 갔다고 하는 회고담이죠. 야곱 역시 애굽의 바로 왕 앞에서 창47:9절에 보면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나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며, 그동안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고 회상하지요. 어쩌면 지나간 삶을 회고해 볼 때 행복했던 날보다 슬프고 고생스러웠던 날이 더 많은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빨리 지나가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지나가는 세월에 대하여 두 가지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세월은 내 것이므로 내 마음대로 마음껏 즐기며 보내자는 것과 세월은 하나님께서 주신 값진 선물이므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시간을 보내자는 생각입니다. 어떤 사람이 시간을 잘 쓰는 사람일까요? 노년의 사도 바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이 말씀처럼 육신은 나이를 더해감에 따라 늙어질지라도 우리의 속마음은 날마다 새로워 져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젊어지는 비결 아닐까요?

 

의사이며 심리학자인 <죤 쉰들리>는 “젊음의 특징은 변화와 성장인데 변화와 성장을 추구하는 삶의 자세를 가질 때 연령에 관계없이 젊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연세가 드신 분이라도 젊게 사는 방법이 있다는 거지요.

 

어떤 분은 노년기를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첫째, 노년의 때는 황혼의 빛을 발하는 때라고 합니다. 한 사람의 일생을 하루의 시간에 비유할 때 청년기를 아침, 장년기를 낮으로, 노년기를 저녁 황혼기로 본다는 건데요. 아침의 햇살도 아름답고, 한낮의 햇빛도 밝지만, 하루 중 가장 찬란하고 은은한 때는 바로 해질녘의 황혼 빛이라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황혼기에 찬란한 빛을 발한 분들을 많습니다. 에녹은 65세에 하나님과 동행해서 찬란한 생의 자취를 남겼고, 모세는 80세에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켰고, 아브라함도 75세 때에 부름을 받아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일반 역사에서도 독일의 괴테는 80세에 <파우스트>를 썼고, 프랑스의 빅톨 위고는 60세에 <레미제라블>, 러시아의 토스토엡스키는 58세에 <카라마죠프 가의 형제들>을 쓰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노년기에 찬란한 황혼 빛을 발한 사람들이죠.

 

둘째, 노년의 때는 다른 사람을 많이 축복하는 때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노년의 때에 이삭에게 축복했고요. 이삭도 노년의 때에 야곱에게 축복했습니다. 야곱 또한 노년의 때에 손자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앉혀 놓고 축복한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젊을 때는 사는 데 급급하여 남을 축복해 줄 여유를 가지지 못합니다. 그러나 노년이 되면 좀 다르죠. 자신의 지나온 삶을 통해 인생이 무언가를 더 깊이 알게 되고 따라서 보다 성숙되고 여유 있는 자세로 남을 돌아보고 축복할 여유를 가질 수가 있게 되는 겁니다. 노년의 시기는 사랑과 축복의 훈훈함을 남기는 시기임을 알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셋째, 노년의 때는 천국 생활을 준비하는 때라고 합니다.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하면요. 청년의 시기는 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청년의 때는 봄처럼 새순이 돋아나고, 꽃을 피우며 뿌리를 내리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장년의 시기는 여름에 비유할 수 있는데요. 여름은 온갖 식물들이 왕성하게 자라고, 녹음이 우거지며, 열매들이 맺혀지는 시기죠. 그러나 노년의 시기는 가을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 때는 싱그럽던 풀잎이 시들고 낙엽이 지는 때죠. 또한 황량하고 쓸쓸하기도 한 때입니다. 그러나 이 가을이야말로 황금의 계절 아니겠습니까? 열매를 거두어 다가오는 겨울과 봄, 그리고 다음 해의 양식을 준비하는 계절이 바로 가을인 것입니다. 노년의 때가 바로 그렇습니다. 노년의 때는 결코 인생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낙엽만 떨어지는 시기가 아니라, 다음 삶을 위해서 오늘을 준비하는 시기죠. “청년은 내일을 바라보고 오늘을 살지만, 노인은 과거를 회상하며 오늘을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인이라고 해서 옛날 생각만을 할 것이 아니라 10년 후, 20년 후엔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오늘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을의 열매처럼 성숙한 믿음의 열매를 준비해야 한다는 거죠. 바로 천국의 삶을 준비하는 겁니다.

 

그리고 아직 나는 노인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분들은

노년의 때를 맞은 노부모님을 잘 모셔야 할 것입니다.

효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윤리와 사회 질서의 기본이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엔 그 정신이 많이 흔들리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느 회사에서 사원을 모집하였는데 입사시험 문제 가운데 “삼강오륜”에 대해서 설명하라는 문항이 있었답니다. 그 때 응시자중 한사람이 “삼강이란 압록강, 한강, 낙동강을 뜻하는 것이며, 오륜이란 올림픽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대답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죠.

 

성경은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6:1-2이죠.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명령입니다. 선택사항이 아니란 말이죠.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부모공경은 누구나 해야 하는 건데요. 부모님을 공경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할까요?

 

첫째, 부모를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존경한다는 말은 높인다는 뜻이죠. 부모가 자식에게 높임을 받지 못하면 남에게도 무시를 당하게 됩니다. 이는 부모란 그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자식으로부터 높임을 받는 위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식에게조차 높임을 받지 못한다면 누구에게 높임을 받겠습니까? 무시함만 당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자식에게 높임을 받는다면 남에게도 높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왕상2:19=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다시 위에 앉고 그 모친을 위하여 자리를 베풀게 하고 그 우편에 앉게 하는지라” 솔로몬은 어머니 밧세바에게 효성을 다하고, 깍듯한 예의를 갖추지요. 왕으로서 본을 보인 겁니다. 왕이 이렇게 하는데 누가 밧세바를 함부로 대하겠어요.

 

둘째, 순종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순종한다는 말은 고분고분 말만 잘 듣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순종의 뜻은 부모의 뜻에 일치한다는 말이죠. 즉 부모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미리 부모의 뜻을 알아 받드는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묘사할 때 “자식들이 일어나 부모에게 사례하는 가정”(31:28)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님께 아무리 감사를 드린다 할지라도 자식을 향한 부모님의 애정과 비할 바가 되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압살롬이라는 불효막심한 아들이 하나 있었지요. 그는 왕권을 빼앗기 위해 형제들을 죽이고, 아버지를 왕좌에서 내좇았으며, 그것도 모자라 심지어는 아버지를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비록 그러한 아들일지라도 그가 죽자 애절하게 통곡을 하였습니다. 삼하18:33절이죠.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압살롬 내 아들아” 이것이 바로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과 부모를 향한 자식의 마음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참으로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넷째, 부모님들의 괴로움을 대신 지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자식의 괴로움을 지기 위해 얼마나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까? 그러나 자식들은 부모의 고충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요즘 세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부모님들은 자식을 기르기 위해 온갖 괴로움을 겪는 반면에 자식들은 부모를 모시는 것조차 어려워서 양로원에 모시려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노부모님의 괴로움은 배고픔이나 병고가 아니겠죠. 그것은 고독이라는 겁니다. 대화의 상대가 없는 아픔이죠. 더우기 오늘날의 텔레비젼 문화는 가족 간의 대화를 빼앗아 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부모님을 잘 모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23:22) 진정 부모님의 괴로운 짐, 고독을 나눔으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효도에는 시간의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모든 일은 내가 살아 있는 한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효도만은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살아계실 때 정성껏 해야겠지요. 그리고 내 부모님뿐만 아니라 교회의 연로하신 분, 이웃의 연로하신 분들에게도 사랑과 존경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부모님들이 노년에 황혼의 빛을 아름답게 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황혼의 빛을 발하시는 우리의 부모님들이 되시고, 또한 부모님들을 존경하고, 순종하며, 감사하고, 부모님들의 고충을 헤아려 대신 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