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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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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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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 N. Dale Avenue Anaheim, CA 92801 (714) 360-3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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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9:28-30 다 이루었다 중세기 캐톨릭이 개신교 신자들을 고문할 때 사용했던 고문도구들을 진열해 놓은 곳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을 거꾸로 메달아 놓고 사타구니 사이로 넣어 켜서 죽이게끔 만든 톱이 있고요. 사람을 기계 속에 넣으면 국수 가락처럼 되어 나오도록 만든 소름끼치는 기계도 있고, 사람을 집어넣고 자물통을 채우면 꼼짝달싹도 못한 채 고스란히 말라죽어 뼈다귀만 남게 만드는 기계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리 이런 고문도구들이 잔인하고 흉측하다고 하지만요. 멀쩡한 사람을 십자가 틀에다 눕혀 놓고 손발에 대못을 박는 그것만큼 잔인할 수 있을까요? 톱으로 켜임을 당해 죽는 것은 5분이나 10분 고통을 당하다 보면 까무러쳐서 죽을 수라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은 절대로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모든 죽음의 고통을 감수하면서 서서히 죽어 가는데요. 세상에 십자가 형틀만큼 무서운 고문형틀은 없습니다. 십자가의 죽음만큼 잔혹한 죽음이 또 어디 있겠어요? 로마의 시세로(Cicero)는 십자가에 달려 죽는 죽음을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죽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에게 어떤 신체적 증세가 나타나며, 또 그 고통이 어떻게 서서히 발전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는지를 의학적으로 분석해 놓은 책이 있습니다. 너무나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데요. 참으로 십자가의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소름끼치는 그 십자가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저주스럽고, 고통스러운 그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눅19:18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새”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합니다. 왜 예수님은 하필이면 그렇게 저주스럽고 잔혹한 죽음을 당하셔야 했을까요? 아무리 우리의 죄 값이 크다 해도 어떻게 이런 끔찍한 죽음을 당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셨을까요? 우리의 상식과 논리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하나님이 너무 잔인하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는데요. 갈3:13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여기서 “저주를 받았다”는 말을 보세요. 왜 예수님이 저주를 받으셔야 했을까요?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기 위해서죠. 율법을 범하여 율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는 우리를 구해내기 위해 우리 대신 저주를 받게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저주받은 자의 처형에 대한 한 가지 원칙이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을 나무에 다는 겁니다. 신21:22-23= “사람이 만일 죽을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율법을 어김으로 받게 된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저주받은 자가 되셨습니다. 저주받은 자로서 나무에 달려 죽으신 거죠. 사람들은 참으로 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통을 당할 때 주변에서 무엇을 하고 있어요? 특히 군사들을 보세요. 빌라도나 대제사장들은 말할 것도 없이 잘못을 했고요. 군사들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습니까? 못 박혀 신음 중인 예수님의 옷을 나누고 있습니다. 요즘이야 처형되는 사람의 옷을 벗겨 나누어 가진다는 것은 정말 웃음거리도 안 되는 일이지만요. 당시에는 옷은 중요한 재산이었지요. 고대사의 전쟁 기록을 보면요. 전쟁을 하면 어느 한쪽이 이기고, 한쪽은 지지 않습니까? 그럴 때 이긴 쪽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전사한 사람의 옷을 전부 벗기는 것입니다. 피가 묻었든지 창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