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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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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2                                                                        좋은 친구

 

본문을 보면 두 사람이 한사람보다 더 낫다고 말씀하는데요. 더 나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첫째로는 함께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혼자 하는 것보다 두 사람이 연합하여 수고하면 훨씬 더 많은 결과를 만들 수 있지요. 능률도 오르고요.

 

둘째로는 한사람이 넘어질 때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넘어졌는데도 일으킬 자가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곤경에 처했을 때 조언을 해주고, 절망의 시기에 위로해주고, 염려와 낙망 가운데 빠졌을 때 용기를 심어주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셋째로는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11=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팔레스틴의 겨울밤은 춥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낮에 입던 겉옷을 침구로 사용되었는데요. 여행자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혼자 자는 것보다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자는 것이 추위를 이기는 좋은 방법이었죠. 이것을 비유로 말하면서 서로 위로하며 도와줄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그만큼 좋다는 말이지요.

 

넷째로는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혼자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여러 사람이 함께 해준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친구가 필요한 겁니다. 친구없이 혼자 사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 보면 불행하지요.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행복하지 못한 사람인데요. 솔로몬은 4장에서 세 종류의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자기의 재능만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4= “모든 수고와 여러 가지 교묘한 일로 인하여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틀림없이 재능이 있습니다. 비상한 두뇌가 있지요. 바보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단점이 있어요. 사회성이 없습니다. 독선적이죠. 자기만 최고고 그래서 남을 무시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지요. 여러분! 재능이 있고 똑똑한 사람이 언제 유익합니까?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할 때죠. 그런데 우월감에 빠져 남을 무시하고 독선적으로 살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요즘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해서 아들 하나 낳고, 혼자 공부하고, 혼자 컴퓨터하고, 혼자 자라서 대인관계나 사회성이 결여된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정신적인 자폐아들이죠. 그래서 결혼생활도 원활하지 못하고, 직장생활도 잘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share하는 것을 해 봤어야지요.

 

2> 돈만 의지하고 게으른 사람입니다.

 

5= “우매자는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느니라” “손을 거둔다.”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열심히 농사일을 하거나 장사를 해서 밥벌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일을 안 하고 어떻게 먹고 삽니까?

이런 사람은 집에 돈이 있는 사람이겠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힘 안들이고 사나? 이런 것만 생각하죠. 일하기 싫어하고, 먹고 놀기 좋아하고, 이런 사람은 결국 자기 살을 뜯어먹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엔 가난하게 되지요.

 

3> 죽도록 일만 하는 사람입니다.

 

일 중독자인데요. 일하느라고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8=“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으니 아무도 없이 홀로 있으나 수고하기를 마지아니하며 부를 눈에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도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 수고하고 내 심령으로 낙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고 하나니 이것도 헛되어 무익한 노고로다”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습니다. 아마 이 말은 진짜 없다는 말이라기보다는 아들이나 형제가 있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일이 중요한지, 가족이나 친구나, 친척들을 나 몰라라 하는 거죠. 일만 압니다. 일의 노예가 된 거죠. 일벌레, 공부벌레, 인간성이 없습니다. 행복할까요? 유대 속담에 “친구 없는 사람은 오른 손을 잃은 왼손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외팔 인생이라는 거죠. 어떤 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20대에는 생명을 걸 수 있는 동지 한두 명을 얻으십시오. 30대가 되면 네 명, 40대에는 여덟 명, 50대에서는 열 명을 얻으십시오. 이 정도만 해도 세상을 움직일 수 있으며, 분명 성공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원수라 할지라도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내라고 합니다. 그분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이지요. 어떤 학자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다섯 가지 방법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장점을 노트에 적어 날마다 읽으라.

둘째, 그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라.

셋째, 미워하는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적극 도우라.

넷째, 미워하는 사람을 의식적으로 칭찬하라.

다섯째, 미소 띤 얼굴로 친절을 베풀라.

 

쉽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쉬운 걸 하라고 하겠어요. 힘드니까 하라고 하지요. 우리는 서로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하고, 또 좋은 친구를 만나야 하겠는데요. 어떻게 하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본문을 보면서 몇 가지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겠습니다.

 

1> 친구가 잘 되도록 도와야 하겠습니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함께 해주고, 도와주어서 좋은 상을 얻도록 하라는 건데요. 이 말은 결과가 좋도록, 다시 말하면 성공하도록, 잘 되도록 하면 얼마나 좋겠냐는 거죠.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에만 혈안이 되어있지, 다른 사람이나 친구의 성공에는 별 관심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좋은 친구는 그렇지 않습니다. 친구가 성공하도록 돕는다는 겁니다.

 

어떻게 돕습니까?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도록 기도하는 겁니다. 나의 작은 도움보다 하나님의 도움이 더 커지 않겠어요.

 

격려하는 겁니다.

따뜻한 격려 한 마디가 얼마나 힘이 있어요?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지요.

 

칭찬하는 겁니다.

핀잔주고, 기를 꺾고, 비난하는 친구는 친구가 아니죠. 이런 이는 가까이 할 필요가 없는 친구죠.

 

2> 친구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 세우는 겁니다.

 

10=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잠17:17=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 넘어진 사람을 짓밟아 버리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겠죠. 세상 말로 “확인 사살”하는 것은 나쁜 겁니다. 넘어지고 실패한 친구를 세워주는 사람이 참 친구입니다.

 

3> 친구가 추우면 따뜻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11=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우리 인생에서 “cold time”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지요. 많습니다. 어려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지요. 요즘같이 경기가 안 좋을 때가 바로 cold time이 아니겠어요? 건강이 안 좋아졌을 때나,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나, 실직을 당하거나, 대인관계가 깨어졌을 때가 cold time이죠. 이럴 때 우리는 친구를 도와주고, 격려하고, 세워주고 따뜻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친구입니다.

 

4> 친구를 위해 힘을 뭉쳐주는 겁니다.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힘들어 할 때 숨거나 안면 몰수하는 것은 친구가 아닌 거죠. 말로나 행동으로 도움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겁니다. 도울 수 있는 범위에서 도울 수 있는 것을 찾아보아야지요.

 

구약에 보면 다윗과 요나단을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참 묘한 관계죠. 다윗은 사울왕의 사위인데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하지요. 아버지를 보면 원수지간이 될 수도 있고요. 물론 자신은 친한 친구지간이고, 미갈을 보면 요나단은 다윗과 처남 매부 지간이 되고요. 참 묘한 관계인데, 이 둘은 세상에 줄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요나단은 사울왕의 장남으로 왕위를 물려받을 위치에 있는 왕자이지만 다윗을 친구로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했지요.

 

요나단의 사랑과 우정은 우리에게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요나단의 다윗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중심의 사랑이었지요.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왕위나, 명성이나, 인간중심으로 사랑을 하였으면 다윗을 절대 사랑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 중심의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요나단의 다윗에 대한 사랑은 좋은 것을 다 주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며, 자신의 좋은 것을 다 주는 것입니다. 왕자의 지위, 즉 왕이 되는 기회를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왕자가 입는 군복과 투구와 띠와 칼과 활과 창을 주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었지요.

 

요나단의 다윗에 대한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요나단은 자신의 왕의 자리를 다윗에게 희생하였습니다. 오히려 다윗을 반대하고 미워하는 대적은 멸망하길 바랐지요.

 

요나단의 다윗에  대한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지 않습니까? 피한방울 남김없이 우리를 위해 다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성경에 넘쳐나죠. 하나님 사랑, 예수님 사랑이 성경의 핵심 아닙니까?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다윗과 요나단처럼 오늘 우리도 이런 사랑과 우정으로 친구를 대하고, 친구를 위해 이런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