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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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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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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 N. Dale Avenue Anaheim, CA 92801 (714) 360-3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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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1:1-11 헛되고 헛되다 솔로몬이 세권의 성경을 썼는데 잠언, 전도서, 아가서입니다. 아가서는 젊어서 썼고요. 잠언과 전도서는 노년에 썼습니다. 잠언은 직설적 어투로 썼고요. 전도서는 역설적으로 썼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세요. 결코 만족이 거기에 없습니다.” 이런 식이죠. 솔로몬은 “해 아래서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선포합니다. “헛되고 헛되다”는 말은 강조적 표현이죠. 만왕의 왕(the king of kings), 만주의 주(the lord of lords), 아가서(the song of songs)처럼 “헛되고 헛되다”도 같은 표현입니다. 헛됨을 강조하는 건데요. 어떻게 보면 허무주의적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왜 해 아래서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하였을까요? 솔로몬은 1장에서 3가지 이유를 말하는데요. 1> 절대로 변화되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4-7절인데요. 먼저, 땅입니다.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그대로라는 거죠. 변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해입니다. 아침이 되면 해가 뜨고, 저녁이 되면 해가 집니다. 이건 창조 이후로 지금까지 반복되는 거죠. 해가 달이 되고, 달이 별로 바뀌지 않습니다. 셋째는, 바람을 말하고 있는데요.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동쪽으로 불다가도, 서쪽으로도 불고요. 마음대로 부는데, 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넷째는, 바다죠. 지각의 변동으로, 지구 온난화로 바다가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있던 바다가 없어지거나 그러지는 않지요. 태평양이 어느 날 없어지고, 대서양이 시내로 변한다거나 하루아침에 큰 바다가 없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땅과 하늘, 바람과 물은 항상 그대로 있습니다. 변화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연을 마음대로 바꾸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분은 누구뿐일까요? 하나님뿐이죠. 수10:6-14절을 보면요. 여호수아가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태양을 멈추신 적이 있지요. 여호수아가 승리할 때까지 해를 멈추셨습니다. 사38:1-8절을 보면, 히스기야 왕에게 사인으로 해를 뒤로 물리신 적이 있고요. 출14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신 적이 있습니다. 막4장을 보면,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람을 막으신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우리가 자연을 마음대로 변화시키고 바꿀 수는 없는 겁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지요. 2> 해아래 새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찾습니다. 그러나 새 것이 있나요? 8절을 보십시오.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만족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조금만 보면 싫증나지요. 새것이 더 이상 새것이 아닙니다. 행17:21절을 보면, 바울이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사람들이 새것을 원하는데 새것이 있습니까? 9-10절을 보세요.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옛날 시카고 무디교회에서 오래 목회하셨던 “아이런사이드”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약에 새것이 있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며, 만약에 그것이 진리라면 그것은 새것이 아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새것을 창조할 수가 없습니다. 새것을 만들었다고 하는 것들은요. 이미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재구성한 것뿐입니다. 에디슨이 발명가로 유명하지만 자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죠. 이미 있는 하나님의 재료들을 가지고 재구성한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은 새것을 창조할 수 없지요.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는 새것이 없고, 만족도 없습니다. 어거스틴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고요. 하나님 없이는 어떤 만족도, 평안도 누릴 수 없는 겁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 안에서만 만족과 안식이 있는 겁니다. 3> 모든 것을 다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13-18절을 보세요. 솔로몬은 누구보다도 지혜로웠습니다. 지난 주일에 본 말씀처럼 지혜를 구하여 지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 되었지 않습니까?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철학, 음악, 동물학, 식물학, 문학, 광범위한 학식을 가졌지요. 성경도 잠언, 전도서, 아가서를 썼습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졌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콩트가 말한 것처럼 그는 권력을 가졌고 “사회를 지배하는 힘은 정보라”고 토플러가 말한 것처럼 솔로몬은 당시 국제사회를 지배하였지요. 그래도 모두 헛되다고 말합니다. 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 같고,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요즘은 지식이 얼마나 급속도로 발전하는지 몰라요. 박사공부를 하여도 2년이 지나면 곱절의 더 많은 지식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인생들이 세상만사를 다 깨달을 수 없다는 거지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유한하다는 거죠. 인간의 지혜는 크게 보면 이런 특성이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는 경험적입니다. 자동차를 만들 줄 몰라도 차를 타고 다닐 수 있습니다. 운전하는 법만 배우면 되니까요. 자신이 차를 만들어서 타는 것이 아니죠. 운전하는 법만 남에게 배우면 차를 운전할 수 있습니다. 전기의 원리를 몰라도 전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하는 방법만 배우면 되는 거지요. 경험적 지혜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논리적인 추론입니다. 내일 비가 올지, 안 올지 아는 겁니다. 그름의 분포와 기압골의 이동을 보고 추론을 하는 거지요. 인간의 지혜는 가치 판단력입니다. 아담이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동물과 달리 판단하고,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지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한계가 있지요.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17절입니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여러분! 그리고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잠시 있다가 없어지게 마련이죠. 잠시 있는 것은 영원한 만족을 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영원한 것은 무엇일까요? 어느 분이 고민을 했습니다. 참으로 영원한 것에 투자를 해야 보람이 있을 텐데 어떤 것이 영원할까? 고민을 하다가 성경을 뒤져보았다고 합니다. 그는 세 가지를 찾았습니다. 첫째, 히13:8절인데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시다는 것을 깨달았고요. 둘째, 마24:35절에서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데, 말씀을 붙잡으면 되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셋째, 요일2:17절에서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아! 그렇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영원한 것이구나! 하나님이 영원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영원에 이르는 길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9=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세상의 유행들은 돌고 돕니다. 한 가지가 영원히 유행하지는 않습니다. 돌고 돌지요. 그런데 참으로 새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복음이죠.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십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과거에는 중고품이었는데, 예수님 안에서 새것이 된 겁니다. 과거에는 쓸모가 없었는데 예수님 안에서 쓸모 있게 된 거죠. 과거 영국 사람들은 야만족이었지요. 그러나 복음이 들어가자 그들은 신사의 나라를 이룬 것 아닙니까? 복음이 사람들을 바꾼 거죠. 새롭게 말입니다. 오늘 1장에서 솔로몬이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걸 모르면 허무주의로 빠지게 되지요. 첫째,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라는 겁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무엇이 영원한 것일까요? 앞에서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영원하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죠.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일2:17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영원히 거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세상도 지나갑니다. 그 정욕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영원한 삶의 발자취를 남기려면 영원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영원한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정말로 의미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라는 겁니다. 다른 말로, 정말 우리를 만족하게 할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8절에 보십시오.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것을 보아도 눈이 만족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이 귀는 결코 차지 아니합니다. 성경은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로 우리가 진정한 것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 진정한 것이 무엇일까요?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닙니다. 우리가 심령 깊은 곳에서 원하고, 찾는 것은 이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이 고백했지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어거스틴이 깊은 밤에 성경을 묵상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천사가 나타나서 주의 메시지를 이렇게 전합니다.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는 깊은 꿈속에서지만 그의 의식과 그의 신앙을 지배하는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 한 분이면 됩니다.” 여러분, 무엇이 우리를 만족하게 할 수 있습니까? 셋째,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를 알라는 겁니다. 고후5:17절이죠.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신약에서처럼 새것에 대한 약속을 제공하는 책은 없습니다.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새 이름을 부여하지요. “새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새 성품”이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이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사도 바울도 나이가 들면서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 겉사람은 후패해지나 내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믿지 않는 사람은 이 말씀을 잘 알 수가 없지요.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의 체험을 한 사람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죠. 믿음 안에서 날마다 새롭고, 뜻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