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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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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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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6:20-24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1914년 12월 어느 날, 토마스 에디슨의 실험실에 불이 나서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에디슨이 60년간 다루어 온 연구 자료, 연구 결과, 그리고 당시 200만 달러에 해당되는 연구 시설물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리려온 아들 찰스의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습니다. 어떻게 설명을 할지, 어떻게 아버지를 위로할지 난감했지요. 그러나 간신히 이 사실을 전한 아들에게 에디슨은 뜻밖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찰스야, 네 어머니를 찾아오너라. 평생에 다시 볼 수 없는 구경을 하려가야 하겠다.” 67세가 된 노인 에디슨은 아내와 함께 불이 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타 버린 실험실을 보면서 태연히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 재난에는 위대한 가치와 교훈이 있소. 우리의 모든 과오는 이렇게 불타 버렸소. 이제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소.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성경 주석가인 월리암 바클레이는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요. 그는 성경을 연구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성지를 무려 백번이나 여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클레이는 확실한 고증과 증거로 성경을 해석한 훌륭한 학자로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어떤 분이 바클레이를 찾아와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귀한 책들을 많이 쓸 수 있었습니까?” 이 때 그 분은 웃으면서 귀에서 보청기를 꺼내 보이면서 “나는 이 보청기가 없으면 전화 벨 소리조차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귀가 어둡습니다. 이것을 빼놓고 앉아 있으면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지요. 덕분에 저는 열심히 책을 볼 수 있고, 성경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어려운 일, 불행한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어디로 인도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불행이라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행복이냐? 불행이냐? 여기에 신경을 쓰고 마음을 많이 씁니다만 사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에 마음을 쓰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적인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는 사람이 더 훌륭한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토인비는 사람들의 태도를 세 가지로 비유하여 말했습니다. 그는 인생이란 모든 사람이 하나의 배를 타고 먼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비유하고 말을 시작합니다. 첫 번째의 사람은요. 배가 어디로 가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로지 배 안에서 먹고 마시는 일에만 전심전력합니다. 먹을 것이 많으면 만족하고, 먹을 것이 없으면 불행해 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요. 배가 어디로 가는지는 관심이 없으나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는 일에는 열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날씨가 화창하고, 좋은 경치가 전개되면 좋아하다가 날씨가 궂고 배가 흔들리면 원망을 하는 사람인데요. 그러나 여전히 배의 행선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세 번째의 사람은 배가 가는 방향을 생각하고 최종 정착지를 생각합니다. 그 길로 가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아는 사람이죠. 그래서 하루하루 자기에게 맡겨진 대로 열심히 노를 젓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세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어느 편에 속하십니까? 우리의 인생 여정은 어쩌면 싸움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싸움에서 승리하는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배워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믿는 사람들에게 어떤 싸움이 있는지 말하는데요. 딤전1:18= “선한 싸움을 싸우라” 엡6:12= “우리의 씨름은(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어두움의 세력들과의 영적인 싸움이 있다는 건데요. 그래서 성경에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한 영적인 군사, 즉 십자가의 군대로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어두움을 비추는 광선과 같은 한 줄기의 찬란한 소망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이미 세상을 이겼으니 담대하라는 말씀이죠. 세상에서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하는 승리의 선언으로 우리에게 담대함을 주는 희망적인 말씀입니다. 종교개혁자였던 마틴 루터는 이 말씀에 큰 은혜와 힘을 얻고, 이 구절에 대하여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무릎으로 기어가면서라도 전할 가치가 있는 말씀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시련과 싸움이 있는데 이런 환경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몇가지 배울 수 있습니다. 1> 고통의 시간이 아주 짧다는 것을 인식하는 겁니다. 요16: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 16-19=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9시간만 있으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게 되죠. 조금 있으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조금 있으면 무덤에서 살아나셔서 다시 본다는 거죠. 이것이 “조금 있으면” 이라는 말씀으로 표현한 겁니다. 물론 이것은 말 그대로 조금 있으면 이루어질 일들이죠. 그러나 실제로 모진 고난을 받고,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은 당하는 사람에게는 짧은 시간은 아니겠죠. 옛날 군대에서 유행처럼 쓰는 말이 있지요.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 군대 3년은 정말 지겹도록 시간이 안가는 기간입니다. 남들이 볼 때는 짧은 기간이지만 본인에게는 긴 시간이죠. 아기를 키우는 어머니들은 이런 생각하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아이고, 언제 다 키워놓고 내 할 일을 하며 사나?” 그러나 여러분! 어떠세요? 그렇게 아기를 키우는 재미도 잠깐 아니에요? 우리가 실제로 고통 속에 있고, 힘든 싸움 속에 있을 때는 시간과 그 중압감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지겠지만, 그것은 잠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실 우리 인생자체를 잠깐으로 표현하지 않습니까? “아침안개와 같다” “들의 풀과 같다”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고통의 순간도 사실은 잠깐이요, 이 세상이 모순투성이요, 악이 득세하고 비진리가 이기는 것 같지만, 그것은 잠깐이라고 하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16: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 하느니라” 옛날에는 아기를 낳으러 들어갈 때 내가 다시 신을 수 있는지 고무신을 한번 보고 들어갔다고 하죠? 그만큼 힘들 일이지만 그것은 잠시고요. 새 생명이 태어남을 인하여 기뻐하며 까마득하게 잊어먹고 그 고통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는 겁니다. 내가 지금 당하는 고통과 어려움을 잠깐으로 생각하십시오. 힘이 들 때는 “조금 있으면! 조금 있으면”이라고 말하십시오. 더욱 밤이 깊다는 것은 아침이 가까이 왔다고 하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2> 승리는 기도에 달려있다는 것을 아는 겁니다. 요16:23-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싸움의 현장 속에 있지만 특별히 주어진 특권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수 있다는 거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역사하신다는 약속이죠.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싸우고 계셨지요. 십자가의 잔을 놓고 마음속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요. 갈등 앞에서도 자신의 가슴을 열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어떠한 싸움이 있으면 그것을 내속에 넣고 꽁꽁 문을 닫아 버리죠. 그리고 다 정리된 것처럼 치장을 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잘못된 함정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지요. 마음을 그대로 하나님께 오픈하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를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환자가 스스로 치료하고 잘 포장해서 의사에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픈 모습 그대로 나가서 고침을 받는 거죠.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그대로 가지고 주님을 부르며 치료자, 승리자이신 하나님 앞에 내어 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죠. 이것이 우리 승리의 기초가 되는 겁니다. 서서 달려오는 병사보다 낮은 포복으로 기어 오는 병사가 더욱 무서운 것처럼 엎드려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을 사탄은 가장 무서워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3> 예수님의 승리가 바로 우리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삼국지에 보면요. 적국에 포위되어 위험한 순간에 관우나 장비같이 싸움을 잘 싸우는 장수가 앞에서 적군을 쓰러뜨리며 길을 터주게 되면 그 길로 군사들이 달려 나가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예수님께서 앞서가셔서 승리하시고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시며 길을 열어 주셨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 주님을 바짝 뒤쫓아 가면 되는 거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주님이 우리의 길을 트게 되면 어떠한 싸움에서도 승리 할 수 있습니다. 승리하신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담대함이 나오게 되는 거죠. 갈렙과 여호수아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장담했지요. 우리도 이미 승리를 약속받았습니다. 이렇게 약속받은 승리를 붙잡고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이기게 되어 있는 존재죠. 안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주님은 말씀하시죠.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역사를 봅시다. 그것은 믿음으로만 보이는 역사죠. 그래서 바울은 롬5:3-4절에서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씀했지요. 그리고 고전15:55-58절에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나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영적 싸움에서 승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싸움에 대장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의지하고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