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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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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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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1:5-11 고난과 위로 ‘고난’이라는 말의 뜻은 “억압하다, 조이다”입니다. 그러니까 “주리를 튼다.”는 말이죠. 옛날 관가에서 죄인을 심문할 때 주리를 틀었는데 바로 그런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고난은 주리를 트는 것과 같아서 매우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이 이런 고난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그 해결책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1> 고난은 보편적이라는 겁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말하는데요.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도 많은 고난을 받았고요. 당대의 의인이었던 욥도 고난을 당했습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많은 고난을 받았지요. 우리는 왜 나만 고난을 겪는가? 왜 나만 이런 고난 때문에 아파해야 하는가? 반문할 수가 없습니다. 종류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고난은 누구나 당하는 거죠. 오늘 우리 가운데도 고난이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찬송가 474장을 우리가 자주 부르는데요.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내 주 예수 날 오라 부르시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 내 주 예수 날 사랑하시오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이 세상에 죄악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 내 주 예수 날 건져 주시 오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이 세상에 어디를 가든지 고난은 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보편적입니다. 2> 고난은 일시적입니다. 세상 사람들은요. 고난을 당하다가 마지막에 지옥의 형벌로 연결되는 비극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성도들은 다르죠. 성도들에게 고난은 일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 289장을 보면 “고생과 수고가 다 지난 후 광명한 천국에 편히 쉴 때 주님을 모시고 나 살리니 영원히 빛나는 천국일세 영광일세 영광일세” 이런 찬송을 우리가 부르지 않습니까? 성도들에게는 십자가 후에 반드시 영광이 있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의 고난은 일시적이라는 겁니다. 3> 고난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무의미한 고난이라면 불행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의미가 있는 고난이라면 그건 유익한 고난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성도의 고난에는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는 고난이 없습니다. 히12: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 하시느니라” 우리에게 유익을 주려고 고난이나 징계를 하신다고 말씀하죠. 그러면 우리에게 고난이 구체적으로 어떤 유익을 줄까요? 우선, 도덕적으로 자기 생활을 반성하게 되지요. 자기 잘못이나 무질서를 뉘우치게 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게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기 편하고, 좀 넉넉해지면 하나님보다는 자기를 의지하고 믿게 되지요. 그러나 시련이나 고난을 당하게 되면 그 때부터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기를 시작합니다. 4> 고난은 위로의 통로가 됩니다. 고난 없이는 위로가 없지요.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다는 말처럼 큰 고난에는 큰 위로가 있고요. 긴 난관에는 길고 더 긴 위로가 있습니다. 5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위로가 따라온다는 거죠. 우리는 이 말씀 속에 세 가지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첫째, 고난과 함께 위로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 없이는 위로도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위로”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헬라어의 위로의 뜻은 “가까이에서 부르다, 초청하다”입니다. 고난 때문에 실의에 빠지고, 고난 때문에 넘어져 있을 때 가까이 오셔서 다정한 목소리로 불러주시는 분이 있는데 누구죠? 하나님이시죠. 이것이 바로 위로입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파선 지경에 있을 때 예수님께서 파도 위로 걸어오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내니 두려워 말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찾아오셨지요. 우리가 고난의 파도를 타고 힘들어 할 때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그 고난은요.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겁니다. 진정한 위로자는 예수님이죠. 우리 주님은 고난당한 자를 위로하십니다. 바로 가까이 곁에 오셔서 부르시고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66:13=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고난 곁에 위로가 있습니다. 고난을 당한 자 곁에는 주님이 계십니다. 고난과 위로는 항상 같은 길을 간다는 거죠. 둘째, “그리스도의 고난”이라는 말씀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고난의 성격과 해결방법을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일부러 높은데서 뛰어내려 머리가 깨지고, 다리가 부러졌다고 합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아니죠. 강도짓을 하고 도망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합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고난과는 상관없는 고난 아니겠어요? 그러나 복음을 전하다가 당한 교통사고라든지, 교회 봉사하다가 입은 부상이라든지, 이런 것은 그리스도와 관계있는 고난이죠. 셋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위로가 넘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위로나, 친구, 친지의 위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위로는 한계가 없는, 넘치는 위로입니다. 사실 참된 위로를 줄 수 있는 분은 우리 주님이시죠. 왜 그럴까요? 그것은요. 우리보다 더 큰 고난을 당하셨고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다 체휼하시고 아시는 분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힘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죠. 위로도 힘이 있어야 합니다. “나사로야 나오느라” 말씀 한마디로 나사로를 살리신 그의 능력이 마리아와 마르다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내게 맡겨라, 내가 처리해 주마.” 주님은 이런 능력이 있지요. 그러므로 주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위로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을 믿고 아는 사람들만이 참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에게 한 성도가 찾아와서 “목사님, 이 세상에서 염려, 걱정없이 살 수 있는 곳이 없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은 “예, 있지요. 공동묘지에 가 보세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고난과 역경을 당하게 마련이죠. 본문을 쓴 바울도 많은 고난을 당했지 않습니까? 8,9=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고난을 당할 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십니까? 누구나 고난을 당하는데 고난이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맨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겠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미워하는 사람들에 의해 감옥에 갇혔을 때 하나님께서 오셔서 이런 말씀을 주셨지요. 렘33: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니라 가라사대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을 찾을 때 위로와 소망을 주시죠. 2> 많은 역경을 겪었던 신앙의 선배들을 생각해보는 겁니다. 욥기를 보십시오. 욥이 얼마나 심한 고난을 겪었습니까? 창세기의 요셉도 많은 시련을 겪었고요.모세도, 다윗도, 바울도 엄청 시련을 겪었지 않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이겨냈는지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알수 있지요. 야고보 사도는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났을 때 “기쁘게 여기라.” “인내하라.” “기도하여 지혜를 얻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많은 고난을 겪었지요. 인내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 도움이 오지요. 해결을 주십니다. 3>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기도로 도와야 하겠습니다.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환란 중에 기도를 부탁하죠. 그래야 환란을 이기고, 더 많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욥의 세 친구들을 보면요. 그들은 훌륭한 친구들이었지만, 그들의 위로가 욥에겐 괴로움만 더할 뿐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위로가 바른 위로가 되지 못하였지요. 인간적 위로가 통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해 주는 겁니다. 기도해 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죠.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성도들이 밤을 새워 기도하였지요. 그날 밤 천사가 나타나 베드로를 옥에서 끌러내고, 성도들이 모인 집으로 인도해 주었지 않습니까? 우리의 이웃이 시련 중에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로 지원해야 하겠습니다. 일본의 <미우라 아야꼬>라는 사람은 폐렴 3기에 류마치스까지 겹쳐 온몸을 깁스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위로를 받자 자기와 같은 시한부 인생을 사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엽서를 써서 보냈다고 합니다. 수많은 폐렴환자들이 그의 엽서를 받고 큰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렇게 남을 위로하는 가운데 그 녀의 병은 점점 더 나아져 나중엔 결혼까지 하고 수많은 책을 집필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 가지 일로 고통당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주님을 가까이 모실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위로로 새 힘을 얻고, 더욱더 기뻐하며, 감사하며, 승리의 자리에 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