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ermons |
|
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
|
530 N. Dale Avenue Anaheim, CA 92801 (714) 360-3022 |





|
시42:1-11 고난 중에 드리는 찬양 시편 42편은 고난과 낙심 중에 드려지는 찬양입니다. 다윗이 고난 중에 하나님을 찾은 시라고 하죠. 그리고 세상에서 고통 가운데 있는 성도가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무엇이 다윗을 이렇게 힘들게 하였을까요? 첫째, 서로 사랑을 주고받아야 할 사람에게 오히려 미움을 당하고 쫓겨 다니는 겁니다. 다윗을 미워하고 고통을 주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아들과 신하들입니다.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죠. 3=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둘째, 하나님의 도우심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9=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어려울 때 하나님의 도움이 바로 나타나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당장 나타나지 않습니다. 셋째, 성전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쫓겨 다니므로 성전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이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지요. 성전에 나가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이걸 못하게 되니까요. 다윗은 너무 괴로워 그 괴로움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닷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 사람들은요. 고난이나 어려운 일을 연속적으로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절망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 다윗에게서도 이런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절망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너무 자기중심적일 때 절망에 빠집니다. 시42편에는 인칭 대명사가 51개가 등장합니다. 시인은 “나”라는 말을 주격으로 14번 사용하고 있고요. “나를”이라는 목적격으로 16번 사용하고 있고, “나의”라는 소유격으로 21번 사용하고 있어서 이렇게 도합 “나”라는 말을 51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하나님”이라는 말은 20번, 그리고 “여호와”라는 말은 1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리 길지 않는 본문에서 “나”라는 인칭 대명사가 51번이나 사용되고 있음을 보는데 이것은 좀 지나치게 많은 숫자죠.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시인이 지나치게 자신을 바라보았다는 증거입니다. 다른 말로 해서 이 시인은 너무나 자기중심적이라는 거죠. 물론 그가 1절에 보면, 애타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고, 하나님을 향하여 소망을 두고 있었지만 중반에서 와서는 차차 그 용기가 사라지고 자기 자신만 바라보게 되죠. 이처럼 한 인격에서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마음도 있지만, 때로는 자신의 연약을 바라보고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잘하다가도 금방 침체에 빠지는 이런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요, 우리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요? 둘째, 대적들 때문입니다. 여기 대적들은 누구죠? 그들은 다윗이 사랑하는 사람들이고요. 다윗을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장인인 사울이었으며, 아들인 압살롬이었고, 다윗을 도와 나라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네 인생살이에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죠. 그래서 아픔이 더 크고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런 고통 속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어찌 우리가 존경하는 다윗일 수가 있을 것입니까? 다윗이 훌륭한 것은 그 고통을 어떻게 감당했느냐에 있습니다. 다윗은 이런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습니까? 1> 하나님을 사모하였습니다. 1-2=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1절의 말씀을 현대어로 옮겨 번역해 놓은 현대어 성경에서는 “암사슴이 시원한 시냇물을 애달아 찾듯, 하나님! 이 몸 주님 그리워하기를 그리합니다. 그렇게 애달아 주님을 찾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목이 말라서 애끊게 시냇물을 찾고 있는 한 마리의 사슴에 비유하고 있지요. 물을 마시지 못해서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을 정도로 갈급해진 사슴입니다. 물을 마시지 못하면 금방이라도 죽을듯한 고통이죠. 다윗은 그런 심정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2>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기를 갈망하였습니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전을 멀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에 나갈 수 없는 것 그 자체가 슬픔이고 비극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교회를 사랑합니다. 교회와 멀리 떨어져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교회 중심으로 살지요. 이런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지요. 3=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다윗은 쫓겨나 있는 동안, 눈물이 음식과 뒤섞였습니다. 눈물이 주야로 그의 음식이 되었지요. 그러나 한편, 원수들은 그를 조롱하지요. 어떻게요? “사람들이 종일 나더라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다윗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뺏겼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윗이 하나님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틀린 생각이지만요. 언약궤가 없다고 하나님도 없는 것은 아니지요. 언약궤 안에 하나님이 묶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다만 반역으로 쫓겨나 성전에 갈수 없음을 탄식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다윗의 슬픔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지만 영혼이 낙망해서는 안 되지요. 그래서 그는 자신의 마음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네가 혼란 속에서 불안해하는데 어째서 그러느냐?” 많은 경우에 우리의 불안은 그 이유를 자세히 조사하게 되면 사라져버리곤 합니다. “어찌하여 내가 낙망하나?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더 많은 이유들이 있는데도 왜 나만 이렇게 야단법석을 떨고 있나?” 여러분! 불안한 마음이 찾아올 때는 하나님을 바라도록 우리 자신에게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대적자들의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다윗은 더욱 간절히 하나님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에는 다윗을 따를 사람이 없었지요. 그런데 지금 다윗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처지지만, 하나님을 뵈올 그날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견뎠습니다. 3> 역경가운데 낙심치 않고 하나님을 기억하였습니다. 다윗은 곤경에 처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기억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멀리 있다고 느껴질 때 외로워지는 법인데요.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하며, 영적 교제를 나눔으로 외로움과 절망을 이겨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했고, 그러므로 낙망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려워질 때 하나님을 바라는 것이 최선의 길이요,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고 도움을 간구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 자세 아니겠어요?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역경 가운데 있을 때 우리를 감찰하시고, 돌보아 주십니다. 하나님을 기억하십시다!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4> 다윗은 슬픔 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내 반석’이라고 찬양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는 신앙 고백이죠. 대적자들의 비난이 칼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고, 조롱하는 말이 다윗을 슬프게 만들었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는 다윗은 하나님께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으면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갈함이 없는 물을 주실 것입니다. 사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다윗이 어려운 중에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이것이지요.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하나님께 나와 도움을 구한 겁니다. 하나님께 나오면 문제해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편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한 수많은 고난이 기록되어 있고, 또 그 역경 속에서 부르짖은 기도와 찬송이 있습니다. 시편은 기도와 찬송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찾고, 기억하고, 믿음으로 구할 때 해결을 받는데, 그러지 못할 때는 영적으로 침체를 겪습니다. 본문 5. 11절을 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 고” 43편 5절에서도 나오지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 고” 성도 여러분! 성도는 슬퍼할 수 있으나 계속 슬퍼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고,가슴 아파할 수 있으나 자기 가슴을 칼로 찔러서는 안 되고요. 자기 무능력을 고백하되 비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인이지만 이제는 용서받은 죄인이고, 하나님 전능하신 왕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 해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고난과 역경 속에도 자기 연민과 슬픔의 자아에 빠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영혼에 스스로 타이르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용기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찬송이 좋은 날만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힘주심으로 고난 속에서 찬송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아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