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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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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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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 N. Dale Avenue Anaheim, CA 92801 (714) 360-3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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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43:1-6 주를 향하여 손을 폅시다. 본문 4-6절을 다시 봅니다.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이 행사를 생각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짧은 인생을 살다 가는데도 당하는 고난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는 내가 잘못해서 생기는 고통도 있고요. 나는 잘못이 없는데, 억울하게 당하게 되는 고통도 있지요.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한숨을 돌리는가 싶은데 해결된 것보다 더 큰 문제가 밀려오기도 합니다. 고생하려고 사는지, 행복을 위해 사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학생들은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요. 사업하시는 분들도 요즘 같으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지요.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없나요? 아니지요. 어쩌면 이 땅을 사는 사람들 모두가 생의 고민과 고통과 괴로움에서 피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어디 우리만 그런가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던 모세도, 당대의 의인으로서 의와 선을 힘써 행하였던 욥도 많은 고난을 당하였고요. 베드로와 바울도 숫한 어려움을 겪었지요. 왜 나만 이렇게 어려움을 당해야 하나? 왜 나만 이런 고통 때문에 속이 상하고 힘드나? 이렇게 반문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종류가 다를 뿐이지 어려움과 고통은 누구나 당하는 것입니다. 어느 잡지에서 독자들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에서 오는 나쁜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묻는 의견 조사를 하였습니다. “속이 상할 때 어떻게 하는가?”하는 질문이었습니다. 20대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잔뜩 취하게 술을 마신다. 2) 디스코텍에 가서 진땀이 날 때까지 흔든다. 3) 노래방에 가서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른다. 4) 문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한다. 5) 친구들에게 전화 걸어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30-40대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술을 마신다. 2) 무조건 집을 뛰쳐나간다. 3) 드라이브를 한다. 4) 책을 본다. 5) 친구를 만난다. 6) 노래방에 간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노래방에 가서 제일 많이 불렀다는 노래는 “소양강 처녀”였다고 합니다. 그 다음 질문은 “당신이 선택한 그 방법으로 속상한 게 풀렸느냐”는 것입니다. 한명도 속이 풀렸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밤새도록 술 마시고, 속 쓰려 죽을 뻔했다.” “밤새 술 마시고, 그 다음날 해장국 먹느라고 돈만 들어갔다.” “차 몰고 집 나갔다 교통사고로 돈만 손해 봤다.” “노래방 가서 소리 질러 노래 부르다 이비인후과 신세졌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 질문은 “당신이 선택한 방법 가운데 어느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건데요.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를 만나서 속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런 친구를 가지고 있는가? 있다면 몇 명이나 있는가?”라는 것이었는데요. 92.5%가 그런 친구가 없어서 그래서 더 속상하다는 겁니다. 사실 속상하는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뿐이겠습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문제를 풀어 갈 수 있을까요? 오늘 봉독한 말씀 가운데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지를 잘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속이 상하는 일이 많지요. 그 때마다 시편 기자와 같이 하나님 앞에 찾아 나와야 합니다. 찬송가 474장에 보면,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내 주 예수 날 오라 부르시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 내 주 예수 날 사랑하사오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주님께 나와 아뢸 때에 평안과 위로를 얻을 수가 있다는 거죠. 본문 4절에도 보면 다윗은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속상할 때에 어떻게 하였는가를 밝혀 주고 있는데요. 1>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습니다. 1=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응답하소서.” 다윗은 자신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하나님께 말하지요. 자신이 부족하고 연약한 죄인임을 먼저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모든 어려움과 고통이 다 자신의 부족으로 왔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속상한 일이 생기면 “나는 이렇게 속상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인데 왜 이런 일이 내게만 생기는 거야! 억울하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속이 상하게 되죠.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2=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인간은 다 죄인이고, 자기도 죄인이라는 거죠. 죄인이 고통을 당하고 사는 것은 당연한데, 그걸 억울하다고, 기분 나빠하고, 속상하면 되겠느냐는 거죠. 몇일 전에 독일의 최고 갑부 중에 어떤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가 나지 않았습니까? 어떤 사람이 증권에 투자를 했다가 엄청난 손해를 보았습니다. 그는 너무 화가 나 식사도 안하고, 고민을 하다가 견디지를 못하고 목숨을 끊어 버렸습니다. 아버지의 병원비를 벌려고 동분서주하던 두 딸아이가 여의치 않자 아파트 옥상에서 나란히 떨어져 죽었습니다. 한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고요. 아버지의 병 치료가 문제가 아니죠. 속이 상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손해를 보았다고,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잃은 것을 찾기커녕 더 큰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고, 남은 가족들까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에요?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문제를 이런 막가파식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식으로 억울함과 고난을 해결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하지요. “주여, 심판을 행치 마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기도하고 그리고 자신의 처참한 모습을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지요. 3-4절에서 그는 원수들로 인하여 죽은 지 오래된 자 같다고 말합니다.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고 합니다. 참담한 모습을 하나님 앞에 고합니다. 자기가 당하고 있는 정신적인 고통과 심리적인 괴로움과 육체적인 어려움을 하나님께 자세히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다윗이 왜 이런 태도를 취했을까요?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을 믿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형편이 좋을 때는 잘 믿는 것 같다가도, 어려워지면 언제 하나님을 믿었느냐는 식으로 원망하고 하나님께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건 믿음이 아니죠. 어려울 때 기도합시다. 기도하되 자세히 말씀을 드려야 합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아프다는 말을 하게 되고, 속이 상한 사람은 속상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걸 사람에게 하듯 하나님께도 하자는 겁니다. 하나님이 괜히 우리 아버지입니까?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죄도 용서해 주시고, 약한 것도 강하게 해 주시지 않습니까? 2> 주님을 깊이 생각했습니다. 5=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 주께서 행하신 일들을 깊이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난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언제나 복되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신 일들을 생각하였습니다. 애급의 노예 생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신 일이며, 깊은 홍해를 가르시고,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신 일과 그리고 자기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행사를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나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상한 마음과 곤경을 다 해결해 주실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출14장에 보면, 애급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 바로가 보낸 기병대의 추격을 받게 되었는데요. 당황한 백성들이 소란을 피우며 모세를 원망했지요. 그때 모세는 뭐라고 외쳤습니까?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에게 행하신 구원을 보라” 모세는 사람이 달랐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믿는 믿음이 다른 사람보다 달랐지요. 지금 우리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을 생각하고 그 능력을 기억해야 합니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나, 기쁠 때나 속할 때, 그 때마다 주님을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이 상한 영혼이 치유 받는 비결입니다. 3> 주를 향하여 손을 폈습니다. 6=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이 내적 행동이며, 정신적인 태도라면 손을 편다는 것은 외적 행동이며 무언가 결단했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 손을 쫙 폅니다. 끝났다는 거죠. 이렇게 되면 자기 몸도 스스로 주체를 못하고요. 전적으로 다른 사람이 처리해 주어야 합니다. 죽었습니다. 다윗이 손을 펐다는 것은 이런 의미겠지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절대적으로 신뢰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심리학들은 말하기를, “못난 척하고, 없는 척하고, 모르는 척하고 사는 사람보다 잘난 체, 있는 체, 아는 체 하는 사람이 10배 이상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게 된다.”고 합니다. 신앙생활도 그럴 것 같아요. “나는 믿음이 부족해, 나는 믿음이 모자라”하며 사는 사람보다 “나는 믿음이 좋아, 내 신앙이 제일이야.”하며 사는 사람이 훨씬 더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깨달았지요. 그래서 자신의 손을 펴 보였죠. “나는 이것 밖에 안 됩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손을 든 겁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주님을 향하여 손을 폈던 시편 기자처럼 나의 필요를 채우시고 내 마음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믿고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할 것입니다. 찬349장에 보면,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형상대로 빚으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우리가 이렇게 찬송하지 않습니까? 주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찬송하는 심령을 우리 주님께서는 찾아오셔서 위로하시며 치료하여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마음이 상할 때마다 겸손히 나의 모든 형편을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며, 주님을 생각하고, 특히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주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며 찬송하십시다. 여러분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