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ermons |
|
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
|
530 N. Dale Avenue Anaheim, CA 92801 (714) 360-3022 |





|
눅18:18-30 영생에 이르는 길 오늘 본문에 보면 한 관원이 예수님께 와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사람을 재물이 많은 청년이라고 하였고요. 본문에서는 관원이라고 하는 것을 볼 때, 일찍 출세한 돈 많은 젊은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침 예수님이 근처를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이 청년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 “달려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놓치면 안 되겠다는 청년의 마음을 읽을 수 있지요. 이렇게 달려와서 한 질문이 무엇입니까? “내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없습니까? 어떻게 구원을 얻지? 어떻게 천당에 가지? 이런 질문 말입니다. 여러분! 청년의 질문을 받은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가 계명을 아는구나!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이 때 청년은 “제가 어려서부터 이런 것은 다 지켜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이 부자 청년을 알고 있다는 말인데요. 그 부족한 것이 뭐라고 하였습니까?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이 말을 들은 부자 청년은 심히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중한 재물을 다 이웃에게 나누어주라고 하니까요.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구원을 받으려면 모든 재물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진리는 무엇일까요? 1> 선하게 살아도 구원받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겁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다 지켜 왔습니다.” “제가 율법을 잘 순종하며 여태껏 살아왔습니다.” 이걸로 구원을,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거죠. 뭔가를 잘 하면, 착하고 선하게 살면, 천당에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이건 오해라는 겁니다. 어떤 분이 Do와 Done의 차이를 말했습니다. 어떤 것을 Do, 하여서,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예수님께서 하신 Done을 통하여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해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지요. 오늘 본문에는 부자 관원 이야기가 나오고요. 다음 장 19장에는 부자 세리장 삭개오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두 사람에게는 닮은 점이 많습니다. 일단 두 사람 다 유대인이고요. 부자였습니다. 그리고 직업이 관원이고, 세리입니다. 요즘 말로는 공무원이지요. 또 같은 점은 둘 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열심을 냈다는 겁니다. 부자 청년 관원은 달려와서 만났다고 하였고, 삭개오는 뽕나무 위에까지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기를 원하였지요. 삭개오가 몇 살쯤 되었을까요? 성경에 나이는 안 나오지만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낮은 세리가 아니고, 그 지역의 세리장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IRS에 최고위층인데요. 4-50대 정도는 되지 않았겠어요? 돈은 얼마나 많은 분이예요? 부자에다, 지위가 높고요. 생각해 보세요. 이런 분이 뽕나무 위에라도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고 싶었던 그 마음을요. 보통 마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부자 관원과 삭개오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관원은요. 어릴 때부터 십계명을 다 외우고 잘 지키던 사람이고요. 삭개오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세리는 도둑이라고 불렀습니다. 십계명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요. 율법을 잘 지킨 사람이나, 안 지킨 사람이나 자기들의 공로나, 업적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거죠. 엡2:8-9절을 보세요.“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고,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죠. 그래서 아무도 자랑할 수 없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은혜로, 믿음으로, 하나님이 선물로 주셔서 구원받았음을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돈을 많이 가져도 구원받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겁니다. 19장에서 삭개오는 돈을 많이 번 사람으로 나옵니다. 그렇다고 삭개오가 행복했나요?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뒤에서 사람들은 비웃고 있고요. 물론 자신도 만족하지 못했지요. 공허함을 느꼈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행복하지 못했어요. 예수님을 만나자 진정한 웃음과 행복을 발견했고,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처럼 귀하게, 소중하게 여기던 돈을 다 버렸습니다. 토색한 것 4배로 갚고, 가진 것의 절반을 이웃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사실 남은 것은 없었지요. 삭개오가 지금까지 번 재산 중에 토색한 것이 얼마였겠어요? 당시 세리장이니까 엄청나게 토색을 했을 겁니다. 재산의 20%만 토색한 거라고 보아도, 소유의 80%는 갚을 돈이고, 남은 20%의 절반을 이웃에게 주면 재산의 10%가 남는 건가요? 먼저 절반을 떼어 놓고, 그리고 토색한 것을 4배로 갚는다면 오히려 빚을 지게 되는 겁니다. 이래서 그는 가진 것을 다 내어놓고 예수님을 따르게 된 건데요. 후에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요? 초대 문서에 따르면 그는 가이샤라의 감독을 지냈다고 합니다. 요즘말로 성직자가 된 거죠. 주님의 일에 여생을 바쳐 헌신하였다는 겁니다. 한편, 부자 청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삭개오가 happy ending으로 끝을 맺었다면, 부자청년은 sad ending인가요? “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막10: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삭개오처럼 버리지를 못하였습니다. 근심하며 떠났다는 건데요. 이 청년은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모르죠. 성경에 이후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으니까요. 다만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요. 막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셨다는 말씀이죠. 이런 청년이 재물 때문에 근심은 하였겠지만, 결국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어쨌든 재물이 인간을 구원하지는 못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재물이 행복을, 영생을, 영원을 책임져 주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계3:17-19을 보세요.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재물이 많다고, 부자라고, 가진 것이 많다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 아닙니까?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십니까? 우리의 공로로 영생을 얻을 수 없고, 재물로도 안 된다는 것이고요. 그러면 무엇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가르치십니까? 26절을 보세요. 부자 청년과 같은 질문이 나옵니다. “듣는 자들이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예수님의 대답을 보세요. 27절이죠.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까?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이시고, 유일한 희망이시고, 그 안에서만 참된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영생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고, 하나님의 방법이죠. 어떤 목사님이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교회 권사님이 입원을 해서죠. 권사님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권사님, 이 세상을 떠나신다면 하나님 앞에 서실 확신이 있으십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권사님은 “확신이라뇨? 목사님, 전 자신 없어요”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권사님에게 요3:16절을 암송해 보라고 했습니다. 권사님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한 구절도 틀리지 않고 또박또박 암송했습니다. 목사님은 권사님께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 가운데에는 권사님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믿으세요?” “네, 당연히 믿죠.” “그러면 이렇게 바꿔서 읽어보세요.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주셨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권사님, 이 말씀이 누구의 약속이지요?” “예수님의 약속이지요.” “그렇다면 이 약속이 진실인 것을 믿으시나요?” “믿지요” “그러면 이 약속처럼 권사님이 진심으로 예수님을 신뢰하신다면 멸망치 않고 어떻게 될까요?” 여기까지 대화하다가 권사님이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천국 가는 거네요.” 여러분! 믿는 자는 당연한 것 아닙니까? 존 웨슬레(John Wesley) 선생님의 유명한 일화입니다. 존 웨슬레가 주님과 교통하며 기도하다가 깊이 잠이 들어 천국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가 천국에 들어서기 전에 천국 문을 지키고 있던 천사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나와 함께 영광스런 복음 운동인 Methodist 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얼마나 천국에 들어와 있습니까?” 그 천사는 잠깐 기다리라고 한 후 명부를 한참 뒤져보더니 “미안하지만 감리교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깜짝 놀란 웨슬레는 다시 물었습니다. “나의 신앙은 잘못된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영광스런 칼빈의 5대 교리를 강조하던 장로교 교인들이 다 천국에 온 모양이지요? 그들은 몇 명이나 왔습니까?” 천사는 한참을 뒤져보더니 “미안하지만 장로교인은 한사람도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종교개혁은 대단한 실수였나 보군요. 그러면 천주교인들이 다 온 모양인데 그들은 얼마나 들어와 있습니까?” 이번에도 천사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웨슬레는 천사의 대답에 큰소리로 되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왔단 말이오?” 천사는 방긋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천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개인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인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만이 와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4:12절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게 된 것을 감사하십시오. 영생 얻음을 감사하십시오. 감사하며 사는 천국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