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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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4                                                                  우리의 기도는?

 

누가복음에 기도에 대한 비유가 3개 있습니다. 11장에 하나 있고요. 18장에 두 개가 있습니다. 둘 중에 하나는 지난 주일에 말씀 드렸고, 다른 하나는 바로 오늘 본문이죠. 오늘 본문에는 두 사람이 대조적으로 나오는데요. 바리새인과 세리입니다.

 

우선 바리새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아주 종교적인 사람이죠. 그리고 도덕적인 사람입니다. 이들은 회당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지요. 율법을 어떻게 지키는지 설명해 놓은 미쉬나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그리고 미쉬나를 주석한 탈무드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종교적이고, 도덕적이고, 선한 사람들입니다. 본문에서도 말씀하죠. 토색을 하지도 않고, 불의, 간음도 하지 않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기도를 하고, 소득의 십일조는 빠짐없이 하고, 참으로 선량한 사람들입니다.

 

한편 세리는 어떻습니까?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이 유대 나라에 허가받은 도적입니다. 이방인에 의해 임명을 받은 직업이고, 정한 세금 외에 더 착복하는 사람들입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을 말할 때는 청중들이 찬사를 보냈을 것이고, 세리를 말할 때는 비난과 조소를 보냈을 것입니다. 누가 봐도 바리새인이 착한 사람이고, 세리는 나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반대로 보셨습니다. 거꾸로 말씀하셨지요.

 

왜 그러셨을까요? 우선 두 사람의 기도내용을 보면 왜 그런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바리새인은 어떻게 기도하였지요?

 

1) 기도 속에 자신의 공로만 자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자신의 잘한 것을 나열하는, 자랑하는 것이 아니죠. 기도는 자신의 부족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세상 다른 종교에서 하는 기도와 명상은 초점이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와 하나님을 연결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죠. 이런 것이 없으면 기도가 아닙니다.

 

2) 기도 속에서 자신의 바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누구나 자신의 허물과 부족을 깨닫게 되는 법인데, 이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깨닫지를 못하였습니다. 자랑만 하지요. 칼빈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자신도 모른다.” 맞는 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고, 어떻게 피조물 인간을 알겠어요? 하나님이 없고 자신의 공로만 자랑하는 것을 볼 때,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모르고, 그래서 자신의 모습도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겸손과 교만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겸손은 자신의 죄인됨을 아는 것이고, 교만은 그걸 모르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을 보십시다.

나는 자랑스럽습니다. 의롭습니다.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않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아직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는 거죠. 하나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은 이런 소리 못합니다.

선하게 살던 선지자 이사야를 보세요.

성전에서 하나님을 뵈옵고 뭐라고 고백하였습니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이로다.” 자신이 엄청난 죄인임을 고백하고 죄 용서를 받지 않습니까?

베드로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고 나서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죄인임을 고백하였지요.

어느 청년이 죄의 무게에 대하여 질문을 했습니다.

죄의 무게가 얼마나 됩니까?” “50kg? 100kg?” “저는 죄의 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하니 죄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때 청년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네요. “이보게 청년! 죽은 송장 위에 50kg, 100kg 나가는 물건을 올려놓는다고 송장이 무겁다고 말하는 것 보았는가?”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죄를 못 느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만이 죄인임을 알고, 죄를 고백하는 겁니다.

 

3) 바리새인의 기도 속에는 하나님의 자비의 필요성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고, 죄인임을 모르는데 자비가 왜 필요하겠어요?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잘못 믿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도 잘 모르고, 그래서 기도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세리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엄청난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지요. 이것이 바른 기도죠. 하나님은 누굴 사랑하고, 누굴 칭찬하셨습니까?

 

어떤 분이 본문을 현대판 이야기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어느 교회에 한 집사님이 헌금기도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이렇게 거룩한 목소리로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제가 이 교회에 20년간 집사로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교회 성전을 저의 이 두 손으로 짖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저는 지난 10년간 한 주일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플 때에도 이를 물고 예배에 참석을 했고, 그리고 하나님이 아시다시피 성가대에서 찬양도 했고, 때로는 목소리가 다른 대원들과 맞지 않는다고 지휘자의 거센 핍박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참으셨듯이 인내하며 찬양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을 주셔서 십일조를 꼭 드렸으며,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술도 마시지 않았고, 담배도 피지 않았습니다.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 우리교회에 저와 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내일 저녁7시에 우리 교회와 이웃 침례교회와의 농구 시합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응원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 이 헌금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아멘!]

 

그런데 그 날 예배 후에 다른 한 분은 예배당 뒤에서 숨을 죽이고 울면서 이렇게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마약딜러였는데, 그날 설교를 듣고 가슴을 치고 뉘우치며 기도를 하는 겁니다.

[하나님! 저는 정말로 큰 죄인입니다. 제가 정말로 그동안 잘못을 많이 하였습니다. 이런 죄인도 용서를 받을 수 있나요? 저를 용서해 주시고, 이제부터는 새롭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정말로 저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은혜를 주시옵소서!]

 

여러분! 누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여러분은 오늘 왜 교회에 오셨습니까?

 

바리새인과 세리는 예루살렘 성전에 기도하기 위하여 갔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전혀 다른 행동과 태도를 취하였지요.

 

바리새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갔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거룩하게, 선하게, 착하게 살았는지를 자랑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show를 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런 것을 금하셨지 않습니까? 6: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우리가 교회에 나오면서 다른 사람보다 나음을 자랑하고, 뭔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나오면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고, 사람들 보라고 나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기도를 해도 하나님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들으라고 한다면 이것도 옳지 않지요.

 

어린 아들이 잠들기 전에 함께 기도하는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날은 아들이 기도를 하겠다기에 하라고 했습니다. 어린 아들은 천장이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이번 저의 생일 선물로 자전거 하나를 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자전거를 주세요.어머니가 “애야! 하나님은 귀머거리가 아니란다.” 그 때 아들이 “저도 알아요. 하나님이 귀머거리가 아닌 것을! 그러나 옆방에 계시는 할머니는 귀를 먹었잖아요.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합니까? 아니면 사람 들으라고 합니까? 교회에는 왜 오셨습니까? 하나님 만나러? 사람 만나러?

 

세리: 하나님을 만나려고 왔습니다. 세리의 기도하는 태도를 보세요. 누굴 찾고 있습니까?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겸손한 모습이고, 참으로 하나님을 찾는 모습입니다. 은혜를 구하는 모습이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온 겁니다.

 

교만이 무엇인가요?

 

자신의 선행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자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나는 내가 얻은 수입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원문에는 “나는” “내가”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를, 자신을 나타내고, 자랑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교만이죠.

 

16:18을 보세요.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그래서 교만은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이죠. 잘못하면 넘어지게 됩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도움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자기만족을 느낍니다. 하나님도 필요 없고, 자신이 최고라는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교만은 다른 사람의 실수만 보게 합니다. 세리를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판단합니다. “너 그게 뭐냐?” 사람을 무시합니다. 바리새인이 세리를 판단하듯이 한다는 거죠.

 

둘째, 여러분은 집으로 갈 때 어떤 마음으로 가시겠습니까?

 

우리가 본문을 보면서 또 생각하고,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두 사람 중에 집으로 갈 때 누가 칭찬을 받았고, 누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느냐 하는 겁니다.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말은요. 하나님 앞에서 옳다는 말이죠. 원래는 옳지 않았지만, 그렇잖아요? 세리가 옳았습니까? 아니잖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옳다고 인정하신 겁니다. 왜요? 죄인임을 알고, 회개하니까요.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죄 없다고 하니까요.

 

여러분! 어떤 마음으로 집으로 가시기 원하십니까? 변화되지 않은, 교만한 마음으로, 여전히 자신을 자랑하며 가기를? 용서받고, 죄의 짐을 다 풀어놓고, 가볍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길? 죄의 무거운 짐을 다 벗어던지고, 가볍고, 은혜로운 마음으로 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바리새인에 가깝습니까? 세리에 가깝습니까? 바른 기도의 자세는요. 오늘 본문을 보면서 배우는 것은요. 자신의 의를 포기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멸시해서도 안 됩니다. 오늘 비유를 예수님은 누구에게 하셨습니까? 9절을 보세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시되” 이런 사람의 기도는 옳지 않다는 겁니다.

 

기도는 사람 들으라고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자신의 공을 나타내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당연한 것은 자랑거리가 안 되는 법이죠.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 문제지, 내가 한다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 한다고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이처럼 자기를 낮추면 하나님이 높여주신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14=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께 인정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