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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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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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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 N. Dale Avenue Anaheim, CA 92801 (714) 360-3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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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8:1-8 기도하는 생활 어떤 도시에 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비천하고,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억울한 일들을 만났고 도와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한 재판관을 찾아갔습니다. 이 재판관은 2절에 보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사람을 무시하는 법관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저들의 명칭은 다야네 게제롯(Dayyaneh Gezeroth)이라 부르는데요. 그 뜻은 ‘형벌을 부과하는 재판관’이란 뜻이지만, 일반 대중들은 ‘다야네 게젤롯’(Dayyaneh Gezeloth) ‘강도 재판관’이라 부를 만큼 불의한 자들이었습니다. 과부는 이러한 재판관을 찾아가 원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불의한 재판관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지요. 그럼에도 그 과부는 계속 찾아가서 괴롭혔습니다. 마침내 그 재판관은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비록 그가 불의한 재판관이었지마는 그 과부의 말한 것을 들어주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말씀하셨지요? 1절을 보면,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기도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우리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첫째,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1절에서 “항상 기도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살전5:17절에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고요.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라 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기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가 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항상 택하신 자들을 대적하고, 송사하고, 정죄하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 버리려 하는 생명의 원수들이 우리에게 항상 도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은 사탄이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울부짖고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벧전5:8, 4:7에서는 “근신하라 깨어라 정신을 차리고 항상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은 기도의 계속만을 의미함이 아니라, 기도의 습관화, 기도의 생활화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본문 7절에는 “그 밤낮 부르짖는 자들”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마음속에 뜨거운 소원을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계속해서 부르짖으며, 뒤로 물러가지 말고, 계속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할 때, 마귀의 진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좋은 예가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7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에 대한 아주 좋은 예가 되지요. 여호수아는 그 백성들과 첫째 날에 한번 돌고, 둘째 날, 셋째, 넷째, 다섯째, 엿새째 날 동안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칠 일째는 그 성을 일곱 바퀴를 돌면서 고함을 칠 때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하루 만에 무너뜨리지 않고, 왜 칠일동안 성을 돌게 하고, 여리고성을 무너지게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전에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지 시험해 보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을 도는 장면을 상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 날, 성을 돌면서 ‘야! 저런 철벽성이 무너질 수가 있을까?’ 그들은 진에 와서 그것을 생각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튿날 또 그들이 성을 돌때 성에 있는 모든 여리고의 군대들과 그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훨씬 더 강해 보이고, 더 무장이 잘돼 있고, 더 튼튼해 보였을 것입니다. 그들을 조롱하는 소리와 천지를 진동하는 고함 소리를 듣고 난 다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에 돌아와서 “과연 저 성이 무너질 것인가?” “저 성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삼일 째도 성을 도는데 분위기가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가 않습니다. 사일, 오일, 육일 째가 되어도 무너질 아무런 징조도 보이지 않지요. 그러나 믿음으로 칠일 째 돌 때, 성은 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거죠. 히10: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눈에는 아무 증거가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가 안 들리고, 손에도 잡히는 것이 하나 없어도 믿고 나갈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일곱 번 기도를 하여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것을 기억합니다. 왕상18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므로 삼년 육 개월 동안 하나님이 진노하사 비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도전장을 던졌지요.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으로 모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은 각각 송아지 한 마리를 가져다가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각자의 신의 이름을 불러 불로 응답하는 신이 진짜라는 약속을 했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이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으나 응답이 없었지요. 하루가 다 지나고 저녁 소재 때가지도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무너진 단을 청소하고 각을 뜬 송아지에 물을 붓고, 야웨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소서 내게 응답하소서"(열왕기상18:37)라고 기도하자 야웨의 불이 내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까지 말라버렸지요. 엘리야는 기손 시내에서 바알의 선지자를 모두 잡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난 후 엘리야는 갈멜산에 올라가서 삼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은 땅에 비가 내리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기도를 한 후 사환에게 비 내릴 징조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일곱 번을 반복했습니다. 일곱 번째 이르러서야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에 보면 얼마나 그가 간절히 부르짖었던지 이 허리가 굽어져서 머리가 무릎 사이에 넣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야는 기도하면서도 “가뭄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메말라 버렸는데 내가 기도한다고 비가 오겠는가?” 의구심을 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끈질기게 기도했습니다. 일곱 번 기도한 후 드디어 징조가 나타났지요. 조금 후에 하늘이 깜깜해지며 큰 비가 내렸습니다. 삼년 육 개월 만에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진 것입니다.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하므로 고침을 받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람의 대장군 나아만은 국가적인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문둥병 환자였습니다. 명예와 지위와 권세가 있었지만 그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지난주일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고침 받은 사건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나아만은 어떻게 고침을 받았습니까?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아온 소녀가 “우리 주인이 이스라엘에 가서 선지자 엘리사에게 보이면 문둥병이 나을 것”이라고 했지요. 이 말을 듣고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집는 심정으로 나아만 장군은 임금에게 얘기해서 이스라엘로 갔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위세당당하게 말들과 병사를 거느리고 당당하게 엘리사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 때 엘리사는 사환을 보내어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하였지요. 이 말에 나아만 장군은 노발대발했습니다. 나아만이 그러죠.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야웨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라고 불만을 토했습니다. 또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 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고 언성을 높이고 분한 모습으로 떠났습니다. 종들이 나아와서 선지자의 명을 따르도록 간청하여 나아만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그자 그 살이 어린아이 살같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아만이 완전한 순종을 하는지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그는 모든 군사들이 보는 가운데서 요단강 물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한번 물에 들어갔다가 나왔을 때 여전히 문둥병이 있었습니다. 그는 “야, 이거 창피당하고 말았네. 우스꽝스럽게 되는 것 아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두 번, 세 번... 엘리사의 명대로 일곱 번 몸을 씻었습니다. 창피와 의심을 이기고, 일곱 번 몸을 물에 씻자 순식간에 그의 몸이 어린 아이의 몸같이 변하고, 문둥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 지고 만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가 일곱 번 물에 들어갔다 나온 것은 보통 시련과 투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믿었습니다. 그 완전한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입니다. 여리고 성 앞의 여호수아나, 삼년 가뭄에 처한 엘리야나, 그 당시에 치료 불가능한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이나, 모두 인간적으로 볼 때는 결코 건널 수 없는 강에 맞섰습니다. 불가능과 절망만이 눈에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모든 의심을 정복하고, 마귀와의 대결에서 이기고 자신들을 온전히 순종의 제물로 바칠 때,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인간의 불가능은 하나님의 가능입니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내게 보여주리라”(렘33:3)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알 수 없는 크고 비밀한 일을 하나님은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가야 됩니다. 둘째,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1절이 또 말하기를 “낙심치 말아야 될 것을”이라고 하였습니다. ‘낙심치 말아야’하는 말은 ‘악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겁쟁이가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승리와 확신에 찬 기도를 가리킵니다. 겨우겨우 기도하거나, 불안 속에서 기도하거나,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마지못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약속을 소망하고 확신하면서 미래지향적인 기도를 한다는 뜻입니다. 왜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까? 무엇보다도 주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닌, 살아 계신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고, 전능하신 하나님, 인격적인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그의 자녀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에게 기도하라고 하신 분이 주님이시죠. 그리고 그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 하신 분도 주님 자신입니다. 그는 이렇게 명령과 약속을 함께 주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7:7).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자가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 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택하신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일에, 기도하는 일에, 소원하는 일에 낙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셋째,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8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바꾸어 말하면 믿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믿고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토레이(Toray)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얻기 위하여 기도하다가 성취되지 않으면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보다 하고, 그 기도를 그만 두는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우리는 기도하기 시작할 때, 먼저 조심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시작해야 되고, 또 기도를 시작했으면 이룰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종교 개혁 시대의 요한 부렌즈(John Brenz)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로마 카톨릭의 폭도들을 피하여 도망치던 중 짚단 속에 숨었습니다. 그 때 폭도들이 그 주변에 들이닥쳤는데 저들이 창을 가지고 그 짚단을 찔렀습니다. 그 때 그는 한 창 끝에 찔려 창끝에 있는 칼이 그의 몸에 들어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발각되지 않고, 10일이 넘도록 그 짚단 속에 숨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일 매일 닭이 와서 그 짚단에 알을 낳아주므로 그것을 먹고, 원수가 떠나기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사람은 기적을 체험하지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중국의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있었습니다. 그가 중국 선교사로 사명을 받아 배를 타고 중국으로 오던 중에, 배가 불행하게 식인종들이 사는 섬으로 잘못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배가 섬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보고, 식인종 수백 명이 잡아먹을 먹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춤을 추면서 창을 들고 바닷가로 몰려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사공은 이 섬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했으나, 바람 때문에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절망의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사공은 “이젠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낙심의 말을 하였습니다. 그 때 테일러가 그 사공에게 “우리가 할 일이 하나 더 남아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배 안에는 신자 네 사람이 타고 있지 않은가? 이제 각각 자기 자리에 돌아가서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시간,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의 기도는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순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들이 기도를 계속하던 그 시간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꾸어지고, 그 바람을 받은 배의 돛이 돌면서 식인종의 섬에 들어가게 됨을 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는 우리가 사용하는 승리의 무기요, 방편이 되는 겁니다. 항상 기도합시다. 낙심 말고 기도합시다. 믿음으로 기도합시다. 주님은 오늘도 “내가 택한 자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계속되는 기도생활을 하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