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530 N. Dale Avenue       Anaheim, CA 92801        (714) 360-3022

17:11-19                                                                 감사하는 생활

 

10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인데요. 본문을 보면서 우리가 몇 가지 생각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안고 산다는 것입니다.

성경 시대에서 문둥병은 고칠 수 없는 질병이었습니다. 현대 의학에서는 한센스 병이라 부르고, 고칠 확률이 높습니다만 옛날에는 불치병이죠. 고칠 수 없는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사회에서 격리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같은 병자끼리 모여 살았고,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도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르고 가까이 오면 “부정한 사람”이라고 소리쳐야 했지요. 사람대접을 못 받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문둥병이 죄로 비유되기도 하였습니다. 죄인들은 바로 영적인 문둥병자라는 겁니다. 1:4,6=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영적으로 병든 것을 문둥병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적인 죄를 누가 고칠 수 있습니까? 예수님뿐이지요. 오늘 우리도 이런 영적인 질병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디 죄뿐이겠습니까? 고칠 수 없는, 해결할 수 없는, 나름대로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고민하는데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을 보면서 깨닫는 진리는 예수님께 부르짖으라는 겁니다.

본문의 병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보자 어떻게 하였습니까? 13=“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부르짖는 자에게는 주님이 응답하십니다. 문제를 안고 그냥 있으면 안 되죠. 부르짖어야 합니다. 한나를 보세요. 문제를 남편에게 하소연하지 않았고, 브닌나에게 따지지 않았지요. 누구에게 나갔습니까? 하나님께 나가 울며 부르짖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외면하셨습니까? 아니지요. 오늘 나병환자들도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소리를 높여 부르짖었어요. 그 소리를 듣고 예수님은 곧바로 응답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려운 문제가 있으십니까? 예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께 나가십시오. 불쌍히 여겨달라고 호소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하십니다. 보세요. 오늘 본문의 병자들이 소리를 지를 때, 모든 유대 병자들이 다 나음을 입었나요? 사마리아 모든 사람들이 다 고침을 받았나요? 부르짖은 사람들만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들만 응답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 디딜 때 하나님의 능력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믿음으로 부르짖는 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가 이적을 체험하였습니다. 응답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처럼 믿음으로 부르짖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그냥 건너갔나요? 아니죠. 믿음으로 모세가 지팡이를 홍해에 내 밀었을 때였습니다. 요단강을 그냥 건너갔습니까? 믿음으로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요단강이 갈라지고 백성들이 건너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발을 내 디딜 때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자에게는 순종이 필수적입니다. 본문을 보세요. 병자들이 부르짖을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아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뭔가 치료하는 흉내라도 내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성의가 너무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이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아니하고 순종하였습니다.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가다가, 순종하여 가다가 기적을 체험하였지요.

만약에 믿음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요? “먼저 고친 다음에 제사장에게 가든 말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짜증을 내고, 불평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불평없이 순종하여 가다가 기적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14장에서 베드로를 보세요. 풍랑이 일어나 제자들이 타고 가던 배가 뒤집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다급하였든지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직접 걸어오셨습니다. 오는 예수님을 보고 “나도 걸어가게 해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오라고 하셨지요.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갔습니다. 문제는 다음이죠. 바다를 보니까, 물을 보니까, 파도를 보니까, 환경을 보니까, 못 걸어갈 것 같았습니다. 순간 의심이 들었습니다. 순종하는 마음에 균열이 간 겁니다. 어떻게 되었나요? 그냥 물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순종입니다. 순종은 믿음이죠. 순종하는 마음에 틈이 생기면, 믿음에 틈이 생기면, 의심이 생기면, 바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까?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걸어갑시다.

믿음으로 기도합시다. 믿음으로 순종합시다. 역사는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릴 때가 가장 아름다울 때라는 겁니다.

9명은 예수님 앞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 돌아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 사람을 예수님은 칭찬하십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이 칭찬은 보통 칭찬이 아니죠. 이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요. 믿음을 칭찬받았습니다.

예수님께 칭찬을 받을만한 믿음을 소유하였던 겁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친찬을 받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인정하시는 믿음 말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사모하였을 때 마리아의 믿음도 예수님께서 칭찬하셨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도 예수님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절대로 손해 보는 시간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공부한다고 교회와 예배에 소홀히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사업한다고 예배에 소홀히 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청년들이 사회생활로 교회에 소홀히 하는 것 역시 옳지 않습니다. 교회 일로 시간을 빼앗긴다고, 손해 본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고, 가장 득보는 시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사장에게 가서 병 고침을 받았다고 판정을 받고, 빨리 집으로 가서 가족, 친척 만나고, 친구 만나고, 직장 알아보고, 다 중요하지요. 이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주님 앞에 나가 감사하는 것,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이것이 더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적어도 예수님이 누군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그리고 감사를 느끼는 것과 감사를 표시하는 것은 다르다는 겁니다.

다른 9명도 감사를 느꼈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것은 사람도 아니지요.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기만 하는 것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감사를 표시해야 하는 겁니다. 감사를 표한 사람과 표하지 않은 사람 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요. 예수님과 개인적인 만남을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 엄청난 차이죠. 본문에서 감사를 표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감사를 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교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얼마나 감사를 표하고 있습니까?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입술의 열매가 무엇이겠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왜 감사를 잘 못하고 살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개 이런 이유들 때문입니다.

 

너무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아프리카나 북한 아이들에 비해서 가난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옛날에는 밥을 못 먹고 자랐다.”고 하면 뭐라고 합니까? “밥 없으면 라면 먹지?” 그러는 아이들 아닙니까? 풍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감사를 못하고 사는 겁니다.

 

NBA 농구 선수 가운데 Charles Barkley가 있었지요. 지금은 은퇴를 하고 농구 해설하는데 나오는 분이죠. 그 어머니가 대선에서 부시를 찍은 아들 바클리에게 화를 내면서 “부시는 부자들의 대통령인데 왜 그를 찍었냐?”고 하더랍니다. 그 때 바클리는 “어머니! 우리도 부자잖아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바클리 만큼은 아니지만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에 비해서는, 북한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보다는 부자 아닌가요? 그들보다 훨씬 풍요롭게 살면서 얼마나 감사하고 삽니까? 오히려 풍요로움이 우리에게 감사를 더 못하게 하지 않습니까?

 

교만한 마음이 감사를 못하게 합니다.

내가 열심히 산 덕분이고, 내가 열심히 공부한 덕이고, 내가 직장에 가서 열심히 일한 덕이지, 하나님이 하신 일이 뭐가 있어? 이건 교만한 겁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잘못이지요. 10:4절을 보세요.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교만입니다. 하나님 없이 다 내가 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교만이지요. 교만한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교만이 감사를 막습니다.

 

불평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입니다.

고전15: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좋은 것은 본받기가 어렵지만, 나쁜 것은 금방 배우죠. 금방 따라합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주변을 보세요. 사람들 모이는데 가면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만 말합니다. 주변을 보면 불평덩어리입니다. 그런 말을 듣고 감사가 나오겠어요?

 

환경 때문에 감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앞에 두고 뭐라고 불평하였습니까? “차라리 애굽에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지 않습니까? 환경 탓을 하면서 감사를 못하고 있어요. 사실은 지금이 더 좋은데도 말입니다. 바울은 그럽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요. 이 말은 “모든 환경에 감사하라”는 말이 아닙니까? 환경 탓하지 말고 감사합시다. 범사에 감사합시다.

 

우리는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감사하는 정신을 개발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대하5:13=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하니까 하나님의 구름이,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는 겁니다. 우리가 찬송하며 감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한다는 거죠.

 

감사를 잘 하려면 불평을 피해야 합니다.

11:1=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불평은 진노를 불러옵니다. 진노를 당하고 감사를 할수 있겠습니까? 2: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리고 감사생활은 매일 매일 감사하는 훈련을 잘 해야 합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6장을 보면, 감사할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사방에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자 굴에 던짐을 당할 처지였습니다. 그렇지만 전에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습니다. 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것은 훈련이 안 되면 어려운 겁니다.

 

그런 다니엘을 하나님은 사자 굴에서도 건져 주셨고, 이방 땅에서 그를 위대하게, 큰 일군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고침 받은 한 사람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던 다니엘처럼, 감사생활을 바로 하므로 예수님의 칭찬을 받는, 하나님 앞에서 쓰임받는 일군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