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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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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Shepherd Christian Reformed Chu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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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17, 2008 눅7:11-17 산 아들이 죽은 아들을! 세 명의 꼬마 아이들이 모여서 자기 아버지 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아이는 “우리 아빠는 종이에 몇 자 글을 적고 사람들에게 주면 100불을 주는데, 그걸 시라고 한단다.” 두 번째 아이는 “우리 아빠는 종이에 몇 자를 적고 사람들에게 주면 1,000불을 주는데, 그걸 노래라고 불러.” 세 번째 아이는 “야 그건 아무 것도 아니야! 우리 아빠는 종이에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말하면, 그걸 설교라고 하는데 여섯 명이 나와서 돈을 거둔다니까!”라고 하더랍니다. 하나의 조크겠지만요. 요즘은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모이면 돈 이야기입니다. 돈이면 뭐든지 다 된다고 하는 사상이 꽉 차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그럴까요? 돈이면 모든 것 다 할 수 있나요? 물론 돈이 있으면 power가 생기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주간에 한국에서 오신 어느 목사님을 만나 아침을 같이 하면서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한국에서 어느 큰 교회는요. 교회당을 짓고 사운드 시스템을 마련하는데 50억이 들었다고 합니다. 50억이면 얼마입니까? 5백만 불이 넘지요. 저는 이해가 안 갑니다. 이건 약과이고요. 서울의 어느 교회는 250억이 들었다고 하네요. 2500만 불이 넘습니다. 음향 장치에만 말입니다. 그런 교회당을 지으려면 돈이 얼마나 많아야 할까요? 그렇게 돈을 많이 들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저는 아직도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돈으로 다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람이 죽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 죽음이 오면 모든 것을 두고 가야 합니다. 미련없이 떠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두 아들이 나옵니다. 두 아들은 공통점이 있지요. 둘 다 독자라는 겁니다. 한 아들은 살아있고, 한 아들은 죽었습니다. 그런데 산 아들이 죽은 아들을 살렸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돈으로 할 수 없는 죽음의 문제를 이 아들이 해결하였습니다. 이 분이 누굴까요?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죠. 오늘 본문을 보면서 3가지 권세를 생각해 봅니다. 1> 죽음의 권세입니다. 히9:27=“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음의 권세를 피해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깝게 한 청년이 죽었는데요. 우리가 생각할 때 꽃다운 나이에 한번 피지도 못하고 졌습니다. 보통은 늙어서 죽지 않습니까? 어떤 분은 “늙으면 찾아오는 많은 benefit이 있다.”고 하는데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맥도날드에 가면 아침 커피 값이 싸고, 아파트 렌트비가 싸고, 또 어떤 것들이 있나요? 어떤 분은 그럽니다. “천국 문에 더 가까이 가게 되는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아요. 올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주 젊은 청년이 죽었습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너무 덥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장례식을 거행한다고 합니다. 빠르면 당일에도 하고, 오후 늦게 죽으면 다음날 아침에 장례를 치룬다고 합니다. 아마 본문의 청년은 오후 늦은 시간에 장례를 치루는 것을 보면 그날 아침에 죽었거나 오래되었어도 그 전날에 죽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입니까? 그 젊은 나이에 죽었으니까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슬퍼하며 장례 행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이 청년의 어머니입니다. 어떤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과부라고 합니다. 그것도 아주 가난한 과부입니다. 남편없이 얼마나 가난하였겠어요? 아들은 아마도 병이 들어 일도 못했을 것이고, 과부 어머니 혼자서 벌어먹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아들이 죽었습니다. 어머니는 제 정신이 아니죠. 계속 울면서 상여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을 이렇게 슬프게 만들고 기가 막히게 만드는 것입니다. 2> 사랑의 권세입니다. 이 청년의 죽음을 가장 슬퍼하는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당연히 과부 어머니겠죠. 하나밖에 없는 젊은 청년 아들이 죽었는데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